광주 남구 봉선동 집에서 가족, 친지와 함께 TV 뉴스 속보를 지켜보던 아버지 용남섭(73) 씨는 "아무 탈 없이 살아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정말 천만 다행"이라며 "건강한 아들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TV 화면에 나온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얼굴이 야위어 많이 걱정했다"며 "국민의 성원과 각계각층에서 많은 애를 써 줘 이렇게 빨리 풀려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 김경애(70) 씨는 "화면에 아들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마음속 깊이 기도를 드렸다"며 "아들이 집에 전화를 걸어와 목소리를 들어야만 안심이 될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용 씨의 부모는 이날 새벽 서울의 큰 아들(48·회사원)로부터 피랍 사실을 전해들었을 때 초조한 표정이었다.
용남섭 씨는 "아침에 두바이에 있는 며느리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넋이 나가 있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고 1과 중1인 손주들도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도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아들이 대학 4년 때 최루탄을 눈에 맞아 실명 위기까지 갔다가 무사히 회복한 일을 떠올렸다.
2004년 4월부터 2년간 중동특파원으로 활동 중인 용 기자는 부인과 아들(고등학생) 딸(중학생)과 함께 현지에 살고 있다.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내년 4월 귀국할 예정이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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