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4시 경 서울 종로구 종로3가 탑골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양모(57) 씨는 베트남 산 담배 '비티(BT)' 한 개비 내밀었다. 첫 눈에도 조악하게 보이는 이 담배는 한 갑에 500원에 팔린다. 가장 싼 국산 담배(1900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양 씨는 "첫 맛은 텁텁하고 씁쓸하지만 길이 들면 피울 만하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의 담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서니 신문지 위에 시밀레(중국산), 위드(〃), 패스(라오스산) 등 수입 저가담배를 파는 노점상이 보였다. 이들 담배의 가격은 500~1500원.
10분 여 동안 10명가량이 담배를 사 갔다. 값을 깎아 달라며 가벼운 언쟁을 벌이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옷차림이 허름한 노인들이었다.
한 판매상은 "500원 짜리는 350원, 1000원짜리는 800원에 사와 팔고 있다"고 말했다. 이 판매상은 "담배 장사를 하고 싶다"는 말을 듣곤 '오야붕'(왕초란 뜻의 일본어)이라 불리는 선글라스를 쓴 50대 남자를 소개시켜 줬다.
'오야붕'은 "이 구역에서 장사를 하려면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한 갑에 100~200원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법 유통되는 담배를 파는 사람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3일 외국산 저가 담배를 들여와 불법 유통시킨 혐의(담배사업법 위반)로 김모(34) 씨 등 12명을 불구속입건하고 1020박스(51만 갑)를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 등은 2004년 11월부터 시밀레 영지 장백산(이상 중국산), 패스 니드(이상 라오스산), BT(베트남산), 평양(북한산) 등 외국산 저가 담배 20종 3000여 박스(150만 갑)를 수입해 탑골공원 등지에 불법으로 판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판매가격이 200원 이하이면 세금이 감면된다는 점을 이용해 담배를 200원에 팔겠다며 수입해 공원 등지에서 500~1500원에 팔아왔다고 경찰은 밝혔다.
또 국내 담배를 위조한 '가짜담배'를 유통한 조직도 붙잡혔다. 가짜 외국 담배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위조된 국산 담배가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조담배를 유통한 혐의(상표법위반)로 정모(40) 씨 등 4명을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 씨 등은 지난해 12월부터 '레종' '더원' 등 국산담배를 위조한 중국산 가짜 담배 900박스(45만 갑)를 유흥업소, 건설현장, 개인 편의점 등지에 판 혐의다.
적발된 담배들은 전문가가 아니면 육안으로 진품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위조됐다.
저가 및 위조 담배의 니코틴과 타르 함유량은 국산 담배의 3~10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KT&G 측은 "국산담배 판매순위 4ㆍ5위인 더원과 레종이 위조됐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라며 "애연가들이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공식판매업소 마크를 내건 지정판매처에서 담배를 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재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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