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면 선반, 사출성형기, 방전(放電)가공기, 용접기, 용해로 등 수십 대의 공작기계가 공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어지간한 부품 제조업체에 견줄 만한 이곳이 여느 공장과 다른 점은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학생 실습용 공장이라는 점이다.
평소 한적한 공장 안은 매주 화요일 오후 1시가 되면 도요타공업대 1학년생 80여 명이 내뿜는 열기로 활기를 띤다.
학생들은 현장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 기술자들의 지도 아래 꼬박 5시간 동안 쇠를 깎고 자르는 일에 구슬땀을 쏟는다.
이들 중에는 컴퓨터 반도체 광학 분야의 학자나 엔지니어를 꿈꾸는 학생도 많지만 도요타공대에 들어온 이상 선반 및 용접기와의 씨름에서 예외는 없다.
“공학 분야에서는 기술자건 학자건 물건이 만들어지는 가장 기초적인 원리를 몸으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이쿠시마 아키라·生嶋明 학장)
일본 자동차 업계가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품질력은 도요타공대가 길러내는 인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학은 ‘물건 만들기’에 관한 한 세계 최고로 꼽히는 도요타자동차가 ‘인재 만들기’를 위해 1981년 직장인 대상으로 설립한 단과대학이다. 요즘은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학한 일반 학생이 직장인 학생보다 5배나 많다.
도요타자동차에 3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이 학교에 입학한 미모토 료이치(味元良一) 씨는 “공부하는 능력은 아무래도 일반 학생들이 우수해서 좋은 개인교사가 돼 준다”고 말했다.
이 대학은 기계, 전자, 재료 등 3개 분야의 공학을 가르치지만 학과는 첨단기초공학과 하나밖에 없다. 지금은 공학 분야가 하나로 합해지는 복합(하이브리드) 산업의 시대이기 때문에 종전과 같이 어느 한 분야만 가르치면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로 키울 수 없기 때문이라는 학교 측의 설명이다.
“도요타 정신인 ‘첨단’을 구현한다” “현장에서 통하는 기술자를 키운다”는 전통이 읽히는 대목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이 학교의 클린룸은 일본 대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첨단 시설이다. 초고온에서 작동하는 집적회로(IC) 부문 세계기록이 이 클린룸에서 나왔다.
학교 안을 느긋하게 둘러보는 데는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 1명이 사용하는 면적은 평균적인 사립대보다 3배나 넓다. 학부생이 총 357명. 대학원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모두 합해도 425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학과의 정원이 1000명을 넘는 도쿄의 유명 대학들에 비하면 초미니 대학이지만 내실은 일본의 어느 대학에도 뒤지지 않는다.
이 대학은 236억 엔에 이르는 자체 운영기금에서 나오는 수익과 도요타자동차의 지원금 등으로 만들어진 탄탄한 재정을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학비는 1학년생이 연간 80만 엔으로 국립대와 비슷한 수준. 다른 이공계 사립대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학교가 지난해 학생 1명에게 쓴 돈은 645만 엔으로 사립대(134만 엔)나 국립대(272만 엔)에 비해 월등히 많다. 우수한 학생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생들은 또한 학점교류 협정을 맺은 나고야 시내 난잔(南山)대에서 따로 인문학과 어학 분야의 공부를 한다.
학생들은 1학년 때 1년간 의무적으로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한다. 8명이 1개 조를 이뤄 생활하고, 식사는 요리 당번을 정해 스스로 해결한다.
3학년생인 야시로 히로나리(八代宏也) 씨는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협동심을 키우고 단체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점도 배울 수 있어서 유익하다”고 평가했다.
1학년과 3학년 때는 각각 1개월씩 산업현장체험(인턴)사원으로 일해야 한다. 학생들이 근무하는 기업은 히타치 등 일본의 유명 제조업체 18개사다.
이때의 경험은 학생들의 취직뿐 아니라 평생 진로를 정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이 대학을 졸업하고 도요타자동차에 취업한 기노시타 다카히로(木下卓浩) 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3학년 때 도요타자동차에서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면서 가솔린엔진 측정실험 부서의 한 엔지니어가 시끄러운 엔진 소음에 섞여 들릴 듯 말 듯한 미세한 소리만으로 이상 부위를 바로 찾아내는 것을 보고 자신이 평생 지향해야 할 기술자상(像)을 찾았다고 한다.
도요타공대 졸업생들이 꼭 도요타자동차에만 대거 취업하는 것은 아니다.
2002년부터 4년간 누계를 보면 도요타자동차가 17명으로 취업 인원이 가장 많았지만 경쟁 업체인 혼다에 간 학생도 11명이나 있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도요타, 활동적인 학생은 혼다, 약간 괴짜형인 학생은 닛산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도요타공대는 지난해 취업을 희망한 졸업생 전원이 일자리를 구했다. 기숙사에서 번갈아 밥을 지으며 단체생활을 익히고 철저한 실무 훈련을 거친 이들의 직장생활 적응력은 뛰어날 수밖에 없다.
마쓰모토 오사무(松本修) 학생부 부부장은 “일본 대학생들이 첫 직장을 3년 안에 그만두는 비율은 평균 34%지만 도요타공대 출신은 3%에 불과하다”고 자랑했다.
나고야=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이쿠시마 학장“교수가 최고여야 학생도 최고된다”
“일본에서도 대학에 가려는 학생이 전체 대학의 입학 정원보다 적어지는 시대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앞으로 학생을 뽑지 못해 문을 닫는 대학들이 꼬리를 물고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이쿠시마 아키라(사진) 도요타공업대 학장은 “대학이 남아돌게 된 시대에 다른 대학과 똑같아서는 학생들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면서 “차별성을 보여 주는 것만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이쿠시마 학장은 차별화 전략과 관련해 “학생을 적게 뽑는 대신 교육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대학의 교수 1인당 학생수는 8.3명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대학보다 학생을 한 명 한 명 자상하게 보살피고 개성을 키워 주는 교육이 가능합니다.”
이 학교를 돌아보면 도요타자동차의 기업문화가 곳곳에 배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도요타자동차는 물건 만들기로 세계 첨단에 선 기업입니다. 도요타자동차와 우리 대학의 공통분모는 첨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수들에게 연구의 첨단을 달려야 한다고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수진의 질도 대학의 자랑거리. 교수 1인당 특허등록 건수는 일본의 모든 대학을 통틀어 10위 이내에 속한다.
학교 내 특허등록 건수 ‘넘버 1’ 기록은 “교수가 그 분야의 첨단에 서 있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엉뚱한 것을 가르치게 된다”고 항상 강조하는 이쿠시마 학장 자신이 갖고 있다.
이쿠시마 학장은 도쿄(東京)대 물성연구소 교수와 광학제품 제조업체인 호야의 연구소장 등을 거쳐 2004년 9월 도요타공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학교 행정으로 바쁜 가운데서도 틈만 나면 연구실로 달려가는 전형적인 학자다.
나고야=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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