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민사사법제도 개선 및 법정언행 세미나’에서 이에 관한 발표와 판사들의 토론이 있었다.》
▽블로그 재판 지원 시스템 ‘착착 진행’=4월 말 처음 시행되는 블로그 재판은 ‘시범운영’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지만 이미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적지 않은 준비 작업이 마무리돼 있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신용카드로 영화표를 예매하고 영수증을 발급받듯이 내년부터는 인지대 등 필요한 소송비용도 신용카드로 납부할 수 있게 된다. 대법원은 이를 대행할 업체와 이미 용역 계약을 체결해 놓은 상태다.
법원은 인터넷이나 블로그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 세대들도 어렵지 않게 블로그 재판에 친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하고 있다.
블로그 안에서 블로그 재판의 기본 개념을 설명하고 각 진행 과정을 안내하는 ‘사이버 캐릭터(cyber character·인터넷상의 ‘인형’ 개념)’가 그것이다.
사이버 캐릭터가 개발되면 법원에 어울리는 적절한 이름을 붙여 널리 알릴 계획이다. 사이버 캐릭터는 블로그 재판 과정에서 궁금한 내용을 즉석에서 설명하는 기능도 수행하게 된다.
블로그를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다. 대법원은 이미 운영 중인 ‘소송문서 전자교환 홈페이지(exdoc.scourt.go.kr)’의 명칭과 운영 방법, 사용 권한 등을 일부 조정해 블로그 재판에 활용할 계획이다.
▽‘국민을 섬기는 재판’의 두 줄기=블로그 재판은 사법부가 추진하는 재판 개혁의 두 개의 큰 줄기 중 하나다.
이용훈(李容勳) 대법원장 취임 뒤 법원은 국민 앞에 투명하고 공정한 재판, 이해하기 쉽고 간편한 재판을 연구해 왔다.
그 한 가지는 ‘구술(口述) 변론’이다.
지난달 대전지법의 KT&G 경영권 분쟁 사건처럼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은 더 넓게 공개하고 더욱 투명하게 재판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건 당사자나 변호사(대리인)는 법정에서 사건의 쟁점과 증거 등을 가능한 한 간단하고 핵심적으로 요약해 주장해야 한다. 사건을 모르는 사람도 재판만 들으면 이해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가 바로 블로그 재판이다.
블로그 재판은 상대적으로 ‘작고 간단한’ 사건을 당사자들이 더욱 편리하고 손쉽게 처리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개발됐다. 사건의 유형이나 주장하는 내용이 대부분 비슷하고 간단한 해결이 예상되는 사건에는 최대한 시간과 노력을 줄이자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두 가지 형태의 ‘새로운 재판’이 조화를 이룰 때 ‘국민을 섬기는 재판’이 효율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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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처리시간 줄고… 민원인 발품 덜고
전자재판의 핵심은 법원의 웹사이트에 소장과 준비서면 등 각종 소송신청서와 증거자료를 올리게 하고 소송비용을 신용카드로 온라인 지불하도록 하는 ‘전자파일링(전자소송제기·electronic filing 또는 e-filing)’ 시스템이다.
미국의 대부분의 연방법원과 주법원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전자파일링을 도입했다.
대법원 장준현(張準顯) 재판연구관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논문 ‘전자법원 도입을 위한 과제’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지난해 9월 현재 2000만 건 이상의 사건이 전자파일링으로 처리됐고 15만 명 이상의 변호사나 당사자가 전자파일링으로 사건을 접수 진행한다.
전자파일링이 도입되면 사건 접수 후 바로 기록 검토가 가능하고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기록에 접근할 수 있어 법원이 사건을 처리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든다.
미국 캔자스 주 쇼니(Shawnee) 지방법원에서는 문서 100건의 접수업무 처리에 소요되는 시간이 전자파일링 도입 전 9.75시간에서 8.7분으로 대폭 단축됐다. 업무량도 1.2일에서 9.63시간으로 줄었다.
미국 유타 주 연방법원의 경우 한 해 9만 건 넘게 접수되는 채무추심(debt collecting) 사건을 전자파일링으로 접수하면서 소요 시간이 건당 10분 정도 줄어들었다.
법원 전체로는 한 해 1만5000시간에 해당하는 업무량을 줄일 수 있었다.
민원인에게도 전자파일링이 도입되면 서류 하나 접수시킬 때마다 법원에 다니느라 발품을 팔 일이 줄어든다. 해당 사이트에 접속만 하면 사건진행 사항과 관련 문서, 판결문 등을 모두 접수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정에 출석하지 못할 경우 자신의 변론을 전자문서로 제출하면 된다.
장 연구관은 “업무처리 절차가 간결해지면서 사건 처리 단계에서 민원인의 불편을 줄일 수 있고 원격 재판이 가능해 사건을 다른 법원으로 이송할 필요성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적으로 탄탄하게 구축된 정보기술(IT) 인프라와 국민들의 IT 활용률과 적응성 등을 감안할 때 미국의 경우보다 더 효과적인 전자파일링 구현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파일링(e-filing)::
법원의 웹사이트에 소장과 준비서면 등 각종 소송신청서와 증거자료를 올리게 하고 소송비용을 신용카드로 온라인 지불하도록 하는 시스템. 대법원이 추진하는 ‘전자재판’ 제도의 핵심.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해외 전자재판 어디까지…싱가포르, 영장실질심사도 화상 통해
전자재판에 관한 해외 사례를 보면 한국의 법원이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는 이미 형사사건에서도 전자법원과 가상법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구속영장실질심사와 민감한 증인 신문에는 화상재판(video conference)이 이용된다.
민사사건의 경우에는 소송자료 등을 온라인으로 제기하는 전자파일링 시스템이 적극 이용되고 있다. 피고는 원고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주장 내용에 전화로 답변할 수 있다. 피고의 답변 내용은 그대로 녹음돼 법원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다.
이 경우 원고와 피고에게는 고유의 개인 식별 번호를 부여해 보안성과 진술의 진정성을 보장한다.
미국에서 전자법원과 가상법정은 원격재판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재판 당사자가 법원에 출석하기 어려울 만큼 먼 곳에 있을 경우 판사는 화상재판 시스템을 이용해 원격 신문할 수 있다.
사건의 증인이 각각 다른 나라에 있어 한곳에 모이기 어려운 경우 각 나라에 걸쳐 동시에 증인 신문을 한 사례도 있다.
호주 등 다른 전자법원 선진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한 소장 제출, 소송비용 납부, 증거자료 제출 등은 이미 일반화돼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전자거래진흥원이 운영하는 자동상담시스템과 사이버조정센터(www.ecmc.or.kr)를 참고할 만하다. 이 제도에서는 인터넷상의 전자상거래 도중 벌어진 문제가 온라인채팅과 음성화상 조정을 통해 해결된다. 당사자들이 조정에 합의하면 민법상 화해계약에 해당하는 조정조서가 작성된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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