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직원인 장희석(38·대구 달서구) 씨는 주말이면 아내 대신 식사를 준비한다. 벌써 11년째다. 이따금 아이들 학부모 모임에도 참석한다. 외출할 때는 반드시 아내 손을 잡는다. 보수적인 지역 정서 탓에 주변에서 놀리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는 “아내와 잘 지내는 게 최선의 노후 준비”라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우덕(鮮于悳) 고령정책연구팀장은 “배우자 등 주변 사람과의 ‘관계’는 건강, 경제와 함께 노후 행복을 가늠할 3대 요소”라고 밝혔다.
본보와 보건사회연구원의 ‘예비 고령자의 노후 행복지수’ 조사에서 30대의 행복지수는 70.5점으로 50점대에 머문 40, 50대보다 높았다. 현재 생활 방식으로 볼 때 30대가 40, 50대보다 좀 더 행복한 노후를 맞게 될 것이란 얘기다.
본보가 창간 86주년을 맞아 실시한 노후 생활 설문 조사와 심층 그룹 인터뷰에서도 같은 경향이 나타났다.
○ 30대, 주택 보유 비율 47.7%
30대는 가족과 사회 관계에서 노후 준비를 비교적 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경제, 건강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의 경제 활동으로는 노후에 쪼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조사에서 경제 분야는 국민연금, 기타 공적연금, 개인연금, 퇴직금, 저축, 부동산 등 6개 항목으로 구분했다.
30대의 노후 경제 여건이 40, 50대보다 좋지 않게 예측된 것은 부동산 보유 비율이 낮기 때문이다.
연령대별 주택 보유 비율은 50대 77.6%, 40대 66%였으나 30대는 47.7%에 그쳤다.
재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현실을 고려하면 부동산 보유 여부는 노후 경제 여건과 직결된다. 중견 건설업체 대리인 이모(33·서울 강서구) 씨는 “집값이 너무 올라 젊은 세대가 월급 모아 집을 장만하기는 어렵다. 집을 담보로 노후 생활비를 조달하는 ‘역모기지’ 제도도 그림의 떡이다”고 말했다.
2003년 통계청 설문 조사에서 저축의 용도와 관련해 30대는 주택 마련을 첫손으로 꼽았으나 노후 생활 대비는 뒷전이었다. 주택 문제가 30대의 노후 자금 준비에 가장 큰 걸림돌인 셈이다.
○ 40대 “몸이 곧 재산”
이번 조사에서 건강 분야의 노후 대비는 경제나 관계 분야보다 높게 나타났다. ‘참살이(웰빙)’ 바람에다 노후 대비 의식이 맞물린 때문이다.
건강 분야의 노후 행복지수는 40대에서 가장 높았다.
학습지 영업을 하는 최모(41) 과장은 지난해 경기 고양시로 이사를 했다. 아침마다 단지 주변을 두 바퀴 뛰고 주말에는 반드시 등산을 한다.
그는 “40대가 되면서 건강 문제를 피부로 느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나의 노후를 생각할 때 운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건강 분야에서도 항목에 따라 연령대별 특징이 엇갈렸다.
30대는 휴식 및 레저, 40대는 운동, 50대는 보약과 정기 종합검진 등의 항목에서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점수를 보였다.
○ 50대, 즐기는 방법을 모른다
노후가 임박한 50대는 경제, 건강 분야보다 관계 분야의 노후 행복지수가 대단히 낮았다. 100점 만점에 48.4점으로 시험 성적으로 치면 낙제에 가까웠다.
서용원(徐用源·심리학과) 성균관대 교수는 “‘베이비 붐’ 세대의 중심인 50대는 앞만 보고 달려 온 제조업 세대”라고 말했다. 직장 일에 매달린 탓에 가족이나 친지와의 관계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이는 노후에 외톨이가 될 수 있는 요인이다.
의류 관련 자영업을 하는 김모(58·경기 수원시) 씨는 요즘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4남매의 장남인 그는 젊은 시절 돈을 꽤 벌기도 했다. 그러나 두 자녀와 동생 뒷바라지를 하느라 저축할 여유가 없었다. 다 큰 자녀는 바쁘고 아내와 단둘이 있으면 왠지 어색하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친구와 만나도 술 마시는 게 전부다.
50대는 경제, 건강 분야에서 노후 준비가 양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은 경제 여건과 관련해 “50대의 노후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이 연령층의 주택 보유 비율이 높기 때문”이라며 “최근 20년간 집값 급등으로 저절로 자본 축적이 이뤄진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연령대별로 나타나는 특징을 감안해 “당장 노후 자금을 준비하기 어렵다면 주변과의 관계 및 건강에 초점을 맞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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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노후의 걸림돌 자녀뒷바라지 1위 건강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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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를 생각하면 걱정이 없진 않지만 기대가 커요. 배우고 또 즐기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볼 겁니다. 그러려면 열심히 준비해야죠.”(30대 회사원 A 씨)
“일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벌어놓은 돈은 없고…. 이제 와서 마땅히 노후에 대비할 방법이 없어요.”(50대 자영업자 K 씨)
젊은층일수록 멋진 노후를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본보가 코리아리서치센터와 함께 창간 86주년을 맞아 전국의 30∼50대 18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후 생활 설문조사에서 두드러졌다.
30대의 82.1%는 자신의 노후 생활이 현재와 비슷하거나 나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어두운 전망은 9.7%에 그쳤다. 노후 생활이 지금보다 나빠질 것으로 예상한 비율은 40대 17.9%, 50대 24.2% 등 나이가 많을수록 높았다.
30∼50대 전체로는 76.9%가 지금과 비슷하거나 개선될 것이라고 응답해 예비 고령층의 노후 전망은 예상보다 밝았다.
노후 준비 방법으로는 연금 및 적금(65.0%), 자영업 준비(16.6%), 주식 및 부동산 투자(15.3%) 등의 순이었다. 딱히 노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은 50대에서 29.6%로 가장 높았고, 30대에서는 13.2%로 비교적 낮았다.
30대는 노후를 적극 준비하면서 밝은 노후를 기대하는 반면 50대는 상대적으로 준비가 부족했고 노후 걱정도 많은 셈이다.
멋진 노후 생활의 걸림돌로는 자녀 뒷바라지가 32.2%로 첫손에 꼽혔다. 다음으로 건강, 자금 부족, 소일거리 부족 등 순이었다.
자녀 뒷바라지에 대한 조사에서 ‘대학 졸업 또는 성인이 될 때까지만 지원하겠다’는 응답이 전체의 52.2%에 이르렀다. 이 같은 응답은 고학력, 대도시 거주, 젊은층에서 두드러졌다. 반면 50대, 중소도시 거주자, 저학력층에서는 ‘자녀에 대해 할 수 있는 데까지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
특별취재팀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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