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스코틀랜드에서 지낼 때 딸이 느닷없이 한 말이었다.
중학교 1학년생이었던 딸이 체육 시간에 버저가 삐삐 울리는 가운데 짧은 거리를 오가는 달리기를 했는데 평균치에 미달했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딸에게 일주일에 세 번씩 점심시간에 30분간 달리기를 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이 말을 듣자 ‘셔틀 런(shuttle run)’이란 단어와 거스 히딩크 감독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는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시절 ‘셔틀 런’으로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했다. 셔틀 런은 점점 짧아지는 버저음에 맞춰 뛰는 20m 왕복달리기다.
딸은 특별 훈련을 받았다. 또 3개월 단위로 체육 시간에 수영, 육상 5종 경기 등을 배운 뒤 ‘셔틀 런 시험’을 치렀다. 한 학기를 마칠 때쯤 딸의 셔틀 런 시험 평가는 2등급에서 5등급으로 껑충 뛰었다.
셔틀 런만큼 놀라운 것은 ‘밥’이었다. 딸이 다녔던 학교는 점심 식사 때 항상 밥을 내놓았다. 학생들에게 담백한 음식을 먹이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고기나 감자튀김에 익숙해진 현지 학생들에게 밥은 인기가 없었다.
‘셔틀 런’과 ‘밥’은 딸이 다녔던 학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이는 스코틀랜드 학교 평가의 한 요소였다. 개별 학교를 평가할 때 학생의 건강과 참살이는 주요한 평가항목이었다. 건강을 얼마나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에선 셔틀 런 대신 셔틀버스를 흔히 볼 수 있다. 학생들을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실어 나르는 셔틀버스는 한국 도시의 일상적 풍경이 됐다. 밤늦게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학생이 건강할 리가 없다.
그 결과 매년 교육인적자원부가 학생 신체검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체격↑ 체력↓’이란 제목의 기사가 나온다. 지난주 서울시교육청의 발표에서도 초중고교생 10명 가운데 1명이 비만이며, 중고교생은 60% 이상이 시력교정 대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PC게임, 과외 공부 등으로 신체 활동의 기회가 감소했다”고 진단한다. 이 진단은 푸념처럼 들리기도 한다. 진단만 할 뿐 문제를 풀어낼 유효한 실행 계획이 없어 개선 의지가 강하게 가슴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해 5월 ‘학교체육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의 9가지 실천과제가 어떤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1교(校) 1기(技), 1인 1운동 익히기’, ‘자율적인 체육 동아리 보급’ 등을 실천하는 서울시의 학교는 거의 없다. ‘맞춤형 학생 건강체력 평가 시스템 구축 및 활용’도 서울시에서는 현재 시범학교 한 곳에서만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교육 당국이나 학교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자녀의 건강은 교육 당국과 부모의 합작품일 수밖에 없다. 자녀에게 공부만 지나치게 강요한 적은 없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자녀의 건강한 습관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는가도 돌이켜 볼 일이다.
체력은 공부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잘나간다는 유명 과외 선생의 말이 생각난다.
“고교 3학년생은 여름이 되면 체력이 바닥납니다. 이때부터 공부는 체력 싸움이죠.”
하준우 사회부 차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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