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3050의실버디자인]실버파워, 이제는 현실이다

  • 입력 2006년 4월 5일 03시 27분


《‘시니어 파워, 이제 현실이다.’

이 말을 가장 실감 나게 보여 준 사례가 바로 지난 17대 총선이었다. 2004년 4월 15일에 실시됐던 총선의 선거구별 투표 결과 분석은 그해 9월에 나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놓은 이 자료는 이제 우리나라의 각종 선거에서 시니어(실버)층이 정치 세력으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시니어층의 표심을 얻지 않고서는 선거에서 당선될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시골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 정치 세력으로 떠오르는 ‘시니어 파워’

이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234개 기초자치단체 중 60세 이상 투표자 비율이 전체 투표자의 50% 이상인 지역이 11곳, 40% 이상인 지역은 46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30% 이상인 지역을 포함하면 무려 89개 시군구에서 노인들의 표심이 당락을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층이 부지불식간에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벌써부터 노인 인구를 정치적으로 결집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대한은퇴자협회는 홈페이지에 ‘5·31선거 참여는 당신의 권리이자 정치 행위’라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 참여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 협회 주명룡 회장은 “이번 선거뿐 아니라 앞으로 대선 등 각종 선거에서 은퇴자들과 시니어층의 주장을 전달하고 정책에 이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60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05년 말 현재 전 인구의 13.4%인 651만3806명으로 추계되고 있다.

○ 급부상하는 시니어산업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은퇴 후 생활이 하나의 사회 관심사로 떠오르자 이제 산업계에서도 시니어 세력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들어 많은 기업이 회사 내에 ‘실버팀’을 발족시키고 시니어산업 쪽으로 진출하는 것을 서두르는 추세다.

㈜파라다이스는 지난달 부장급을 팀장으로 하는 실버산업 리서치팀을 발족하고 실버용품 산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이 회사 홍보담당 최종문 이사는 “작년부터 해외의 실버산업 시장을 조사해 왔으며 국내에서도 실버산업의 시장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GS건설을 비롯한 다수의 건설회사도 실버주택 산업 분야에 적극 진출하는 것을 전제로 현재 기획팀을 가동하고 있거나 팀 발족을 고려 중이다.

국내 시니어산업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은 보건복지부 자료에서도 드러난다. 복지부가 지난달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유료 양로시설은 2004년 말 49곳에서 지난해 말에는 81곳으로 1년 새 무려 65.3%가 늘어났으며 치매와 뇌중풍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유료 노인요양시설도 2004년 100곳에서 지난해에는 167곳으로 67%가 증가했다.

공공시설과는 별도로 민간 사업자가 영리를 목적으로 설립한 시설로, 시장이 시니어산업을 유망한 업종으로 보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시니어산업 시장이 2000년에는 17조 원 규모였으나 지난해에는 27조 원으로 늘어났으며 2010년에는 약 41조 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한욱 한국실버산업협회장은 “국내에서는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을 주도해 왔던 베이비 붐(1955∼63년 출생자)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 시기를 맞는 2008년부터 실버산업 시장이 꽃을 피우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세대는 일정한 수준의 재산 축적도 되어 있으며, 또 국민연금을 본격적으로 타는 세대이기 때문에 그만큼 구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연령층을 겨냥한 신문과 잡지들도 속속 창간되고 있다. 노인들을 독자층으로 한 주간신문인 ‘노인시대’가 올해 2월 창간돼 매회 8만 부를 발행하고 있다. 노인과 은퇴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정책, 건강, 취미, 여행, 실버타운 등에 대한 정보로 꾸민 이 신문은 대한노인회와 공동으로 발행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신문의 김광언 편집주간은 “벌써부터 노인층을 타깃으로 하는 각종 광고가 몰려들어 별다른 광고 수주 노력이 없어도 광고 지면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정도”라고 소개했다.

또 4월부터는 시니어 전문 월간지인 ‘아름다운 실버’가 창간됐으며 지난해 3월 부산에서 창간된 월간지 ‘한국실버산업신문’도 당초 2만5000부에서 점차 부수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이 신문 측의 설명이다.

○ 주요 문화 소비 계층으로

출판 영상 공연 등 문화 영역에서도 이제 시니어 계층은 무시하지 못할 소비 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문화계는 20대에서 40대까지의 연령층을 타깃 계층으로 삼았으나 최근에는 50대 이상의 시니어 계층이 주력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다. 교보문고가 자사의 북클럽 회원의 구매 경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도서 구매액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60대였고 그 다음이 50대였다.

공연계도 마찬가지. 특히 입장료가 10만 원이 넘는 대형 뮤지컬은 시니어 계층을 잡지 못하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해 초 공연했던 ‘노트르담 드 파리’의 경우 매회 50대 이상 장년층이 객석의 40% 이상을 차지했다는 게 공연기획사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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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한 노년’ 고정관념부터 깨라

“고령자는 건강하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않다는 획일적인 고령자 상(像)에 얽매이지 마라. 고령자는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경제적으로 풍족해졌고 다양한 실태가 있다는 것에 입각해 정책을 전개하라.”

최근 일본 내각부에서 펴낸 ‘2005년 일본 고령화사회 백서’에 나오는 고령화사회대책 대강령 기본자세 제1항이다.

일본은 이미 11년 전인 1995년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고령화사회대책회의를 출범시킨 노인문제 선진국.

이 백서는 우선 고령화사회대책 대강령의 목표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수(長壽)에 대해 긍지를 갖고… 연대의 정신이 넘치는 풍요롭고 활력 있는 사회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고령화사회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강조하면서 긍정적인 노년을 맞이하자는 취지다.

이어 기본자세 2항에서도 “기존 고령기의 건강, 경제, 사회관계 등의 문제에 관한 대처에 그치지 말고 젊었을 때부터 문제를 예방하고 노후를 대비하는 국민의 노력을 지원한다”고 밝히고 있다.

기본자세는 또 △고령자의 적극적인 지역사회 참가 유도 △남녀 공동 참가 중시 △의료 복지 정보통신 등 첨단 과학기술이 고령자에게도 널리 보급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백서는 또 노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나 예외적인 우대 없이 노인을 가급적 젊은 사람들과 같은 시각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이 백서는 “나이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응한 정책을 펴야 한다”면서 “연령으로 취업을 제한하거나 반대로 나이만으로 일률적으로 우대하는 관행을 재검토한다”고 밝힌 것.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본격적인 고령화사회 대책을 수립하기 시작한 지 4, 5년에 불과한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고령화사회 대책에서 참조할 대목이 많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정동우 사회복지전문기자 forum@donga.com

반병희 차장 bbhe424@donga.com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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