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서관 앞 집회 금지’ 공약한 서울대 총학생회장

  • 입력 2006년 4월 14일 03시 00분


그제 서울대 제49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황라열 씨는 공사장 인부, 배추 장수, 이종격투기 선수, 백댄서 등의 경력으로도 화제를 낳았지만 그의 ‘반(反)운동권’ 공약도 관심을 끈다. 서울대 법인화 반대나 양극화 해소를 내건 운동권 후보들과 달리 그는 서울대 이미지 변화와 취업 및 복지 문제 해결을 내세웠다. 특히 ‘도서관 앞 광장 집회 금지’ 공약은 면학(勉學)이 학생의 본분이라는 상식을 부활시켰다.

도서관 앞에서 꽹과리를 치고 악을 쓰듯 외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운동권의 전통이었다. 당시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386 운동권의 상당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참여했다. 노 대통령의 비서를 지낸 정태인(1978∼83년 서울대 학부 재학) 씨는 386 운동권에 대해 “정의감은 있지만 아는 것도 많지 않고 전문성도 없다”고 최근에 말했다.

하필 도서관 앞에서 시위를 벌여 학구파의 공부까지 방해했던 운동권의 속성은 지금 사회를 20 대 80으로 가르고, 집단적 하향평준화와 극단적 투쟁을 ‘정의’로 여기는 행태로 발전했다. 노 정부 3년간 경제가 한번도 잠재성장률을 웃돌지 못했고, 서울대 졸업생도 일자리를 못 찾아 쩔쩔매는 현실은 이들의 ‘코드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황 씨의 당선은 이념에 빠져 허우적거려 온 386세대에 대한 21세기 후배 세대의 거부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황 씨가 교내 정수기와 교통카드 충전기 설치 등을 약속해 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듯이 젊은 세대는 현실적이다. 수구적(守舊的) 이념단체로 전락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약한 데서 드러나듯이 황 씨를 당선시킨 학생들은 맹목적 투쟁을 혐오한다.

황 씨는 “명분과 당위성의 시대는 지났으므로 총학생회의 위상과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며 ‘작은 학생회’를 이끌겠다고 했다. 이는 국가사회에도 적용돼야 할 패러다임이다. 국민은 이념적 투쟁적 운동권 정부가 아니라 실용적이면서 유능한 작은 정부를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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