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절반 바로 풀려난다… 집유 벌금형이 50%넘어

  • 입력 2006년 4월 17일 03시 04분


《‘한국은 성폭행범의 천국’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한국 법원의 중견 판사가 한국 성폭행 범죄자의 양형(量刑)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그렇다. 성폭행 범죄자가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는 비율은 미국은 기껏해야 20% 수준인 데 반해 한국에서는 50%가 넘는다. 또 강제추행 범죄자에 대한 징역 형량은 미국에서는 평균 65개월인 반면 한국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14개월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55단독 설민수(薛敏洙·사법시험 35회) 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미성년자 성폭행범에 대한 대응: 사회적 구금과 한국 법원의 방향’이라는 논문을 올렸다. A4용지로 140쪽이 넘는 방대한 논문이다.

설 판사는 2005년 10월에서 2006년 1월까지 4개월간 서울중앙지법(1심)에서 선고된 강간, 강제추행 등 성폭행 범죄 64건의 양형을 분석해 논문을 작성했다.

전체 64건의 성폭행범죄 사건 중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사건은 25건(39%)이었다. 그 밖에 피해자가 고소를 취하해 공소기각 판결이 난 사건이 7건(11%), 벌금형 선고 2건(3%)으로 집계됐다. 반면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30건(47%)이었다.

결국 성폭력 사건 피고인 중 절반이 넘는 피고인이 집행유예나 공소기각,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나는 셈이다.

성폭행 범죄자에 대한 높은 집행유예 비율은 다른 법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전국 1심 법원에서 2002∼2004년 강간과 강제추행, 성폭력처벌법 위반 및 청소년 성보호 법 위반 등으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비율은 2002년 58%, 2003년 57%, 2004년 56% 등으로 나타났다. 실형 선고비율은 2001년 44%, 2002년 42%, 2003년 43%, 2004년 44% 등이었다.

설 판사는 “미국 법원에서 성폭행 범죄자가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는 비율은 20% 정도에 불과한데 한국에서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선고받고 대책 없이 풀려나는 경우가 절반을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또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의 양형은 더 큰 차이가 난다. 강도강간 사건 피고인의 경우 미국 법원(2002년 전국 주 법원 통계)은 평균 징역 104개월을 선고하는 데 비해 한국 법원은 60개월을 선고했다. 강제추행 사건의 경우 미국법원은 징역 65개월을 선고했지만 한국법원은 징역 14개월을 선고했다.

설 판사는 “성폭행 범죄자에 대한 양형의 가장 큰 문제는 성폭행범죄를 절도·폭행 등 다른 범죄와 같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폭행범죄에도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가 양형 기준으로 적용되다 보니 피고인의 재범 위험성이나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성 등이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에서 검토 중인 전자 팔찌 제도에 대해서는 범죄 예방효과가 크지 않아 미국에서도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등 일부 주에서만 제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며 제도 도입에 신중할 것을 권고했다.

2002∼2004년 성범죄 1심 선고결과
연도실형 건수집행유예 건수
20022312 건 (42%)3150 건 (58%)
20032013 건 (43%)2683 건 (57%)
20041933 건 (44%)2467 건 (56%)
자료: 사법연감 등
설 판사는 오히려 출소 후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통해 재범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성폭행 전과자에 대해 미성년자와의 접촉이 금지되고 취업에 제한을 받을 뿐 아니라 치료 프로그램에도 참여해야 한다.

설 판사는 “성폭행 범죄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볼 수 있다”며 “성폭행 범죄자에 대한 엄격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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