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 검토 ‘긴장의 평택 대추리’

  • 입력 2006년 4월 18일 03시 05분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민들이 17일 기지 이전 예정지인 도두2리 농지에서 못자리를 만들고 있다. 평택=연합뉴스
미군기지 이전에 반대하는 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민들이 17일 기지 이전 예정지인 도두2리 농지에서 못자리를 만들고 있다. 평택=연합뉴스
“누구 맘대로 철조망을 쳐. 우린 목숨을 걸고라도 농사를 지을 테니까 두고 봐.”

17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K-6(캠프 험프리스) 일대 대추리, 도두2리 주민들은 들녘에서 본격적인 농사 준비에 한창이었다. 국방부가 이 지역을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해 철조망을 치고 주민들의 접근을 막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졌지만 겉모습은 여느 농촌이나 다름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논에 나온 주민들은 트랙터로 논을 고르고 마른 논에 볍씨를 뿌렸다. 한쪽에서는 16일에 이어 이틀째 못자리를 만들기 위해 모판과 비료포대를 나르고 논에 물을 대기에 여념이 없었다.

마을과 가까운 밭에서는 이미 마늘 등 밭작물이 자라고 있고 고추를 심기 위해 놀고 있는 땅에 이랑을 만드는 주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국방부 얘기를 꺼내자마자 격앙됐다.

트랙터를 몰던 김지태(45·팽성주민대책위 위원장) 대추리 이장은 “국방부가 원하는 대로 하려면 주민들을 다 병신을 만들든지, 구속시키든지 해야 할 것”이라며 “주민 한 명이라도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대추리와 도두2리에는 200가구 중 60여 가구가 떠났을 뿐 140여 가구의 주민들이 국방부의 협의매수를 거부하며 남아 있다. 이들은 전국 시민사회단체와 반미단체 등이 모인 ‘평택미군기지 확장반대 범국민대책위(범대위)’와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한 지 오래다.

한 주민은 “남아 있는 주민들은 국방부가 토지 경작자에게 줘야 할 2년치 경작 보상비는 대부분 수령하지 않았다”며 “따라서 주민들에게는 아직도 농사지을 권리가 엄연히 살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대위 역시 이날 국방부 방침에 즉각 논평을 내고 반발했다.

이호성(36) 범대위 상황실장은 “군사시설도 없는 농지 일대를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설정해 총칼로 국민을 몰아내겠다는 초법적인 발상”이라며 “국방부는 평택에 대한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 검토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주민들은 국방부 방침과는 아랑곳없이 다음 달 15일경 예정대로 모내기를 강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20여만 평의 논에서는 건답직파(마른논에 볍씨를 뿌려 싹을 틔우는 방식)를 끝냈고 이달 말경 싹이 틀 것으로 주민들은 전망했다.

국방부는 앞서 주민들이 뿌린 볍씨가 4∼5cm 자라면 농작물의 소유권을 인정받게 돼 2008년 말로 예정된 기지 이전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며 다음 달 안에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부가 계획을 밀어붙일 경우 흥분한 주민들과 국방부, 경찰 간에 대규모 충돌도 우려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민들 사이에선 국방부가 섣불리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과 함께 철조망을 치는 작업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우선 대추리와 도두2리 주민 70%가량이 집을 지키고 있고 전국적 조직인 범대위가 대추분교에 자리를 잡고 있어 군이 강제집행에 나선다면 화약고를 건드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한편 군사시설이 아닌 곳의 경비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던 경찰은 이날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기지 이전지역에 대한 국방부의 경비 요청에 협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평택=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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