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정윤수(35·여) 씨가 소중히 간직해 온 꿈은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4년 전 그 꿈을 영화배우 설경구와의 ‘촬영으로 이뤘다’.
2002년 영화 ‘오아시스’에서 여주인공 문소리에게 장애인의 생활과 동작을 가르쳐 주는 장애인 연기 지도 모델을 맡았던 정 씨는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엮은 책 ‘꽃보다 활짝 피어라’(천년의 시작)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오아시스’ 촬영 당시 주연을 맡은 설경구와 웨딩사진을 찍게 된 사연을 공개했다.
‘오아시스’를 찍을 때 정 씨는 제작팀이 내민 사례를 뿌리치고 한 가지 조건을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평생 웨딩드레스 한번 입어볼 수 없을지도 모르므로 남자 주연배우와 웨딩사진을 찍게 해 달라”는 것.
그는 드레스를 곱게 차려입고 설경구와 함께 웨딩사진을 찍었다.
“나처럼 특이한 신부와 웨딩사진을 찍는 것이 힘든 일일 텐데 설경구 씨가 호흡을 잘 맞춰 줘서 그 자체가 한 편의 영화 같은 느낌이었어요.”
정 씨는 여섯 살 때 괴물 같다는 이유로 친부모에게서 버림받은 뒤 삯바느질로 연명하는 외할머니와 단둘이 지냈다. 서른 살 때 유일한 보호자인 외할머니가 세상을 뜬 뒤로는 혼자 지내며 전동휠체어 스포츠댄스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책에서 그는 어릴 적 자신의 신체와 목소리를 자각하고 스스로 충격을 받은 일, 디스크 등 온갖 합병증으로 인한 괴로움과 장애인에 대한 냉대에 시달렸던 경험을 털어놓지만 성격은 밝고 적극적이다.
‘불판 위의 오징어’처럼 온몸이 뒤틀리면서도 그는 ‘내 영혼이 빌린 몸’이라며 끝까지 좌절하지 않았다. 2002년 일본 장애인 복지 프로그램 연수를 마친 뒤에는 ‘장애시민 행동연대’라는 단체를 이끌기도 했고 2003년부터 전동휠체어 스포츠댄스 선수로 활동하며 가톨릭대 평생교육원 사회복지학과에 다니고 있다. 그가 앞으로 해 보고 싶은 3가지 일은 ‘번지점프, 드럼치기, 나이트클럽 가기’.
결혼하고 싶은 소망을 ‘촬영’으로 달랬던 그는 5월 실제로 꿈을 이루게 됐다. 10여 년 전 장애인 직업훈련원에서 만난 사람과 20일 웨딩마치를 울릴 예정이다. 꿈을 이룬 그는 책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장애인)도 바라보고 들으며 말하고 웃는다고. 그리고 한마디 더 보태는 것이 허락된다면? 우리도 노래하고 춤을 추며 뛰어오른다고 말하고 싶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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