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1676∼1759)이 1742년 비단에 채색한 선유봉의 모습은 진정 ‘신선이 놀았던 봉우리’였을 것만 같다. 그림 속 봉우리와 능선의 소나무, 강변에 한가롭게 떠 있는 나룻배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봉우리는 사라졌다. 일제가 1925년 한강에 큰 홍수가 나면서 제방을 쌓기 위해, 또 1929년 개장된 서울 여의도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해 선유봉의 암석을 채취한 탓이다.
1978년 그 자리에 정수장이 세워졌다. 한강 물을 수돗물로 정화하는 기능이다. 이 정수장은 수명을 다한 뒤 2002년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양화대교 중간 부분에 오롯이 자리 잡은 선유도(仙遊島)공원이다.
▽조경과 건축의 조화=이 공원은 과거의 정수장 시설을 일부 남겨둔 채 자연을 덧입혔다. 국내 최초의 재활용 생태공원이다.
정수장의 약품침전지를 재활용한 수질정화원에는 부레옥잠과 갈대, 창포 등 수생식물이 자라고 있다.
정수지의 콘크리트 상판을 걷어내고 기둥만 남겨 둔 녹색기둥의 정원은 삭막한 기둥을 담쟁이덩굴과 줄사철나무로 감쌌다. 시간의 정원에는 노루오줌과 대나무, 고사리류, 자작나무 등 각종 꽃과 나무로 가득했다. 계절별 꽃을 심어 이 공간에서 사계(四季)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는 게 공원 관계자의 얘기다.
선유도공원의 전체 설계를 맡은 조경설계사무소 ‘서안’의 정영선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정수장 시설을 남겨둔 것은 근대산업시설을 기억하자는 취지다. 부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재활용함으로써 조경과 건축이 조화를 이루게 된다.”
선유도공원은 사전에 예약하면 자원봉사자의 상세한 설명을 듣거나 생태교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02-3780-0590∼5, hangang.seoul.go.kr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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