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교회재산권 판례변경…‘한지붕 두교회’ 분쟁해결

  • 입력 2006년 4월 22일 03시 16분


목사 정모 씨는 S교회 담임목사로 일하다 교회 장로들과 갈등을 빚자 별도의 기획위원회를 만들어 교회를 운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소속 교단의 징계를 받을 정도가 되자 2001년 8월 자신을 지지하는 교인들을 모아 기존 교단을 탈퇴해 새 교회를 세웠다.

정 씨는 기존 교회의 이름을 새 교회에 붙였고 기존 교회의 건물과 대지 등에 대한 소유권을 이전해 갔다. 기존 S교회는 부동산 소유권 등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이 사건의 대법원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50년간 이어져 온 판례를 바꾸고 새 해결 기준을 제시했다.

기존 판례는 한 교회의 일부 교인이 떨어져 나와 새 교회를 세우더라도 기존 교회의 재산권을 나눠 줄 수 없는 하나의 재산권으로 봤다. 따라서 새 교회가 기존 교회의 재산을 나눠 가질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교회의 분열은 그대로 인정=이 같은 사건에서 교회가 둘로 나뉘더라도 교회 건물이나 대지, 헌금 등 교회의 재산은 어느 한쪽의 것이 되지 않는다. 교회의 재산은 교인 모두의 소유라는 ‘총유’ 개념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교회가 둘로 나뉜 경우 교회의 재산권이 어디로 귀속되는지에 대한 법적인 판단을 유보해 온 셈이다. “양쪽 모두의 것이다”는 논리로 이에 개입하지 않았다. 이는 법원이 교회 재산 분쟁도 ‘신앙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개입을 자제한 데 따른 결과였다.

하지만 이 때문에 양쪽 교회 사이의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서로 다른 교단에 소속되거나 서로 다른 신앙 노선을 갖게 된 교회들이 하나의 재산권을 두고 서로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계속돼 온 것이다.

▽“재산 분쟁은 허용하지 않는다”=대법원은 교회 재산 분쟁에 관한 이 같은 소극적 입장을 바꿨다. ‘재산 분쟁’은 신앙의 자유와 상관없는 것으로, 법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선언한 것이다.

대법원은 기존 교회의 교인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교회 재산권의 이전이 가능하다는 예외 규정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기존 교회의 교인 3분의 2 이상이 새 교회로 옮겨갔다면 교회의 실체가 새 교회로 옮겨진 것이라는 얘기다.

이 판결로 서로 다른 신앙 노선을 가진 교회들이 하나의 재산권을 두고 어중간하게 공존해 온 상황을 해소할 기준이 생긴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교회 내부에서 교단 탈퇴나 변경을 둘러싸고 다툼이 발생할 경우 적법한 절차를 거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판례 변경에 대법관 13명 가운데 12명의 의견이 일치했다.

이 가운데 손지열(孫智烈) 박재윤(朴在允) 김용담(金龍潭) 김지형(金知衡) 대법관은 “교단 탈퇴나 변경은 교회를 해산한 뒤 재조직하는 것으로 봐야 하므로 3분의 2가 아닌, 4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는 별도의 의견을 냈다. 박시환(朴時煥) 대법관은 “교회의 분열을 인정하고 세례 교인의 수에 따라 재산을 분배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강신욱(姜信旭) 대법관은 “판례를 바꾸면 다수 교인의 지지를 받는 권력자가 소수 교인을 내쫓거나 교회 분열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유일하게 판례 변경에 반대 의견을 냈다.

김영란(金英蘭) 대법관은 다수 의견을 지지하는 보충의견을 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개신교계 반응

개신교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교회 운영에 교인들의 뜻이 적극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총회나 노회 등 교단의 교회 장악력이 떨어져 교회 분열이 촉발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각 교회의 재산권은 교단이 갖고 있는 경우와 개별 교회 교인들이 함께 갖고 있거나 목사 개인이 소유하는 경우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이번 판결로 인해 앞으로는 교단 측에서 개인 비리가 있거나 목회 성향이 잘못됐다고 판단해 목사를 제명할 경우에도 해당 목사가 교인 3분의 2를 모아 교단을 탈퇴하면 교회 재산을 갖고 나갈 수 있다. 이번 판결 결과를 우려하는 쪽은 대부분 교회의 교인들이 목사에게 순종적이어서 목사가 횡포를 부려도 이를 덮고 따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단 차원의 목사 징계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현실적으로 교인 3분의 2를 끌어 모으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예수교장로회통합 유지재단 김정식(金正植) 간사는 “각 교단이 독자적 신앙의 특성을 살리고 재산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산하 교회와 목사에 대해 갖고 있던 장치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현재 분쟁 중인 교회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목사가 교단의 징계를 받고 탈퇴했으나 기존 교인들을 나눠 목회하고 있는 서울 K, J 교회의 경우 이번 판결은 해결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즉 교단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교인 3분의 2를 확보한 쪽이 재산권을 갖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잔존 교회가 재산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잔존 교회란 건물의 개념이 아니라 교단으로부터 인정받는 교회란 뜻이라고 법률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아울러 기준이 되는 교인 수는 현재의 교인이 아니라 탈퇴(분열) 당시 의결권을 가진 교인 수를 뜻한다. 그러나 과거의 교인 수를 정확하게 산정하는 일은 매우 힘든 일이어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예장통합 사무총장인 조성기(趙誠基) 목사는 “이른 시일 내에 교단 차원의 회의를 열어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