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신영동 세검정초등학교 부근 골목길을 오르다 보면 검은색 벽돌에 원목을 덧댄 독특한 외양의 2층짜리 단독주택이 눈에 띈다. 김 선생이 1974년에 직접 디자인한 집이다. 이 집이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공간’ 사옥의 축소판=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건물은 1971년 종로구 원서동에 세워진 김 선생의 설계사무소였던 ‘공간’ 옛 사옥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대문을 열면 지그재그 형식으로 된 계단과 벽면 아래에 있는 은은한 조명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마당에 심어진 은행 앵두 자두 감 모과나무 등이 집 주변에 둘러서 있다.
집 내부는 1970년대 건축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실험적이다.
1층에는 넓은 통유리가 달린 창이 있어 집 안에서 마당이 훤히 보인다. 여닫는 창문은 통유리 양 옆에 작게 달려 있다. 마루는 넓고 방 2개는 각각 2평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2층에는 서재와 베란다만이 있다. 2층 복도 중간에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의 천장은 피라미드형 투명유리로 만들어져 하늘이 올려다보인다.
바깥 계단을 통해 건물 옥상에 올라서면 북한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풍수지리학자에 따르면 이 집은 북한산의 ‘배꼽’에 해당하는 곳이다.
고인은 이 집을 평소 ‘세이(洗耳·더럽혀진 귀를 씻어 깨끗이 한다는 의미)장’이라고 불렀다. 그는 별과 산을 보며 세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대지 118평인 이 집은 김 선생이 별세한 뒤 원로 음악평론가 박용구 씨, 배우 예수정 씨에 이어 2004년 한국개발연구원(KDI) 김동률 연구위원이 인수했다.
김 위원은 “요즘도 국내외 건축 관계자들이 이 집을 찾을 정도로 멋스러움이 있는 공간”이라며 “집이 낡아 조만간 내부를 수리해 입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집이 보존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일대는 풍치지구(경관을 보전하기 위해 건설교통부 장관이 도시계획으로 결정한 지구)로 지정돼 있지만 지역 주민들이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은 “이 집을 보존하고 싶지만 주위 사람들이 개발을 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양대 서현(건축학) 교수는 “김 선생의 옛집은 30여년 된 건물이지만 현대 건축물로 보존할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김 선생의 대표작으로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경동교회, 샘터사옥 등이 있다.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