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선 유럽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많다. 또 이 분야는 사회의 정치, 경제적 흐름에 따라 박사학위 취득 국가의 순위가 달라졌다.
1990년대 문학과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자들은 구소련의 붕괴, 러시아와의 수교(1990년), 중국과의 수교(1992년) 등이 이뤄진 뒤 유럽의 진보적 학풍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90년대 문학박사 취득자 수는 프랑스 소르본대(1위), 미국 오스틴 텍사스대(2위), 러시아 모스크바대(3위) 등의 순이었다.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지닌 국가에서 박사학위를 많이 받았다.
2000년대 들어 문학박사 취득자 수는 베이징대(1위), 도쿄대(2위) 등 1∼5위를 모두 아시아 대학이 차지했다.
정치학 분야에서는 1990년대에 독일 베를린자유대가 1위, 러시아 모스크바대가 3위였다. 연세대 지역학대학원 고상두 교수는 1996년 베를린자유대에서 ‘비교정치’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 교수는 “독일 분단 이후 개교한 베를린자유대는 진보적 학풍을 지니고 있으며 1990년 독일의 통일은 분단국가인 한국 유학생의 관심을 끌었다”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정치학 분야에선 중국 베이징(北京)대와 미국 시카고대가 1, 2위다.
법학은 독일의 쾰른대가 1970년대부터 강세. 1996년 쾰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희대 법학과 서보학 교수는 “쾰른대에는 형법학자의 거두 한스 벨첼 교수를 비롯해 유명한 교수가 많았다”고 전했다.
2000년대 들어 사회과학 분야에선 베이징대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경제-경영학, 텍사스A&M-미주리-워싱턴대 등▼
한국의 경제학 전공자들은 1970년대부터 시카고학파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많이 받았다.
1980, 90년대에는 오하이오주립대, 2000년대에는 텍사스A&M대 출신 박사가 많다. 2000년대 경제학 분야의 외국 박사학위 순위는 텍사스A&M대(14명)가 가장 많았고 이어 미주리대(12명), 워싱턴대(시애틀·11명) 등의 순이었다. 이들 대학은 시카고학파가 주류다. 시카고학파는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학파다.
오하이오주립대는 통화금융과 거시경제, 텍사스A&M대는 미시경제 분야에서 강하다.
1990년에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현의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통화연구실장은 “교수의 80%가 시카고학파이며 탄탄한 이론과 실증으로 무장해 상당히 수준이 높았다”고 말했다.
경영학 분야에서 가장 많은 박사학위 배출 대학은 1980년대에는 오스틴 텍사스대, 1990년대에는 조지아주립대, 2000년대에는 네브래스카대다.
경제·경영학 박사학위 취득자 수는 일반의 예상과는 달리 2000년대 들어 줄어들고 있다. 1980, 90년대에 이들 분야의 박사학위 취득자는 전체의 11%였지만 2000년대 들어 8.4%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고려대 경영학과 김동원(金東元) 교수는 “경제·경영학이 강한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외국 학생이 늘어나면서 한국 학생의 입학 허가가 예전보다 까다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이공계, 도쿄대-도쿄공업대▼
이공계에서는 1990년대 이후 미국 텍사스A&M대의 독주가 눈에 띈다. 이 대학에서 1990년대 이후에만 370명(공학 268명·이학 102명)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대학은 1980년대까지는 10위권에 들지 못했다.
오스틴 텍사스대는 1980년대 이공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 대학은 이때 공학 분야에서 1위(48명), 이학 분야에서 2위(25명)를 차지했다. 이들 대학은 공학 등 엔지니어링 프로그램이 특화돼 있을 뿐 아니라 학비가 싸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텍사스A&M대 출신 박사들은 “실용주의적 학풍이 강해 교수들이 졸업 후 사회에서 바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가르쳤다”고 말했다.
오스틴 텍사스대에서 1985년 박사 학위를 받은 서울대 김승조(金承祚)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결혼한 유학생이 조교로 일하면 배우자의 등록금은 거의 공짜였다”며 “당시 한 학기 등록금이 150∼200달러여서 경제적 압박을 느끼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대와 도쿄공업대도 1960년 이후 공학 분야에서 줄곧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40여 년간 도쿄대에서 307명, 도쿄공업대에서 266명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는 생활형편이 어렵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면 등록금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어 한국 유학생이 많이 몰렸다.
유연한 교육과정도 유학생들에게 인기였다. 1995년 이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한 이금용(李金鏞)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필수과목이 없어 학생들이 자신의 연구 결과로만 학업 성과를 평가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의학, 中헤이룽장 중의약대 - 교육학, 美컬럼비아대▼
의학 분야에서는 오사카대와 도쿄대, 헤이룽장(黑龍江)중의약대 등 일본과 중국 대학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도쿄대와 오사카대는 1970년대부터 5위권에서 각축을 벌였으며 1990년대에는 나란히 1(19명), 2위(11명)를 차지했다.
중국 헤이룽장중의약대는 1990년대까지는 10위권에 들지 못하다가 2000년대 1위(20명)에 올랐다.
의학 분야는 공학(1901명·2000년대 기준)이나 경영(307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국 박사학위자의 수(109명)가 적다는 게 특징이다.
의학 관계자들은 “대부분 국내 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기 때문”이라며 “의학 분야 중 면역학이나 미생물학 등을 학문적으로 공부하려는 연구자들이 외국행을 택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까지 몇몇 독일 대학을 제외하고 미국 의대가 순위에 거의 들지 못한 것도 눈에 띈다. 이 시기까지 5위권 안에 든 미국 대학은 보스턴대(2명)가 유일하다.
일본 대학이 미국 대학보다 입학이 쉽고 등록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일본 출신 박사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교육학은 컬럼비아대가 1980년대 이후 강세(1980년대 3위, 1990년대 2위, 2000년대 1위)를 보였다.
유학원 관계자는 “이 대학은 영어교육 프로그램뿐 아니라 영어교사 양성과정(TESOL)이 잘 갖춰져 있어 영어교육 수요가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간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진호(金珍鎬) 대구교대 수학교육과 교수는 “세계적인 교육학자 존 듀이가 교수로 있었던 곳으로 이론 중심의 하버드대에 비해 교사 재교육이나 현장 교육 등 실천적 교육학이 발달해 있어 한국 학생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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