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정모(37·무직) 씨는 “2004년 발생한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사건 중 3건의 범행도 저질렀다”고 자백함에 따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정 씨가 이 사건의 진범일 것으로 보고 24일 구속 수사 중이다.
전과 5범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온 정 씨는 단돈 몇 만 원을 빼앗기 위해 ‘불특정 다수’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완전범죄를 위해 목격자를 모두 살해하려 했으며 자신을 기다리는 취재진에 혀를 내미는 등 반성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것도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柳永哲)을 닮았다.
▽잔인한 범행=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2004년 2월 이후 최근까지 서울 금천구, 관악구, 동작구, 영등포구 등 서남부지역 일대를 배회하다 문이 열려 있는 집에 들어가 범행했다고 자백했다.
정 씨는 지난달 27일 오전 4시 반경 관악구 봉천8동 김모(25·여) 씨의 단독주택 2층에 침입해 잠을 자던 김 씨 자매 3명을 둔기로 때려 1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중태에 빠뜨린 뒤 이불에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중태에 빠진 김 씨의 동생 중 한 명은 며칠 뒤 숨졌다.
정 씨는 또 지난해 4월 18일 금천구 시흥동의 모 빌라에 들어가 황모(47·여) 씨와 황 씨의 아들 이모(13) 군을 둔기로 때리고 금품을 털었으며 같은 해 10월 9일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에서 정신지체 3급 장애인인 30대 여성 2명을 둔기로 때려 중상을 입히기도 했다.
정 씨는 이달 22일 오전 4시 50분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의 김모(24) 씨 집에 들어가 김 씨를 둔기로 때리고 금품을 훔치려다 김 씨의 아버지(46)와 김 씨에게 붙잡혔다.
경찰은 정 씨가 소지한 교통카드를 조회해 이동 지역을 알아내고 추궁한 결과 “주로 지하철 2호선으로 이동하면서 잇따라 강도 사건을 저질렀다”는 자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정 씨에 의해 두 딸을 잃은 박모(48·여) 씨는 셋째 딸이 입원해 있는 동작구 중앙대병원에서 검거 소식을 전해 듣고 “졸지에 두 딸을 잃고 남편까지 범인으로 몰렸다”면서 “지금까지 경찰은 도대체 뭘 했느냐”며 오열했다.
▽‘묻지마 범행’=정 씨는 경찰에서 “직장도 못 구하고 결혼도 못해 화가 나 부자만 보면 죽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씨의 범행 대상은 정작 서울 서남부지역 서민 주택가의 여성과 장애인들이었다.
정 씨는 고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89년 특수강도죄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으며 절도, 야간주거침입절도, 강제 추행죄 등으로 다시 붙잡혀 실형을 살았다.
2003년 3월 출소한 정 씨는 현재 인천에서 어머니와 누나, 동생 등과 함께 어렵게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씨는 거주지인 인천이 아닌 서울에서 범행 장소를 골랐으며, 무인카메라가 설치된 강남 지역에서 범행하면 붙잡히기 쉽다고 보고 인천과 가까운 서남부지역에서 범행했다.
정 씨는 또 완전범죄를 위해 목격자는 모두 살해하려 했고 옷가지나 이불을 태워 범행 흔적을 없애려 하는 등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경기 부천시 등지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경기지방경찰청과 공조 수사를 벌이는 한편 정 씨가 범행 당시 콘돔을 소지하고 있었고 성폭행 관련 기사 7건을 스크랩해 놓았던 점으로 미뤄 정 씨가 성폭행 등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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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피해자가 잡은 범인, 호송중 놓쳐…시민 신고받고 겨우 다시 붙잡아
경찰이 시민 덕분에 잡은 서울 서남부지역 연쇄살인 용의자 정모 씨를 호송과정에서 놓쳤으나 다시 시민들의 힘으로 붙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정 씨는 22일 오전 4시 50분경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주택가의 김모(24) 씨 지하방에 침입했다가 옆방에서 달려온 김 씨의 아버지와 친구에게 붙잡혔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3차례나 둔기에 뒷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는 등 중상을 입었다.
김 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영등포경찰서 신풍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이 정 씨를 넘겨받았다. 그러나 정 씨는 경찰관이 자신을 순찰차에 태우기 직전인 이날 오전 5시 30분경 수갑을 찬 채 인근 주택가 골목길 쪽으로 달아났다.
경찰은 160여 명을 동원했으나 정 씨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이날 오전 7시 45분경 한 주민이 “옥상에 누가 숨어 있다”고 고함을 질렀다. 경찰이 이 소리를 듣고 쫓아가 2시간 15분이 지난 뒤에야 정 씨를 다시 붙잡을 수 있었다.
경찰은 2004년 1월에도 연쇄살인범 유영철 씨를 절도 혐의로 붙잡아 조사했으나 혐의를 밝혀내지 못해 풀어주는 바람에 추가 범행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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