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유대인의 교육열은 정평이 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고향 유대 땅을 떠나 세계의 떠돌이가 되어 살면서도 자식교육 하나만은 자기 삶의 마지노선처럼 붙들고 늘어져 온 민족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유대인은 세계 어디에서나 감히 남들이 얕잡아 볼 수 없는 ‘무서운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다.
교육열 하나만 가지고 말한다면 한국의 어머니들을 능가할 어머니가 어디에 또 있을까.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했다지만, 오늘 한국의 어머니들은 세 번이 아니라 열 번이라도 이삿짐 싸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강남아파트 값 폭등의 뇌관 역할을 한 것은 경기도의 작은 도시 지역에 도입된 고교평준화 제도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집권당 정치인들은 대학입학 전형 방식에 손을 대어 민심을 사볼까 하고 요리조리 바꾸어 보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몸의 상처처럼 손을 대면 댈수록 더 악화되는 면도 있다. 열화 같은 교육열이 정부 당국의 모든 조치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 어머니들의 뜨거운 교육열을 그냥 나무랄 수만은 없다. 어쨌거나 사람 이외에 자원이라고 별것이 없는 한국이, 나라를 새로 세운 지 50∼60년 만에 세계 경제력에 있어서 10위에 올라오게 된 것은 이 뜨거운 교육열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은 의무교육 제도가 필요 없는 나라다. 우리보다 못사는 많은 나라들은 국가가 학부모에게 자식을 학교에 보내도록 애를 쓰지만 그게 잘 먹혀들지 않는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그러나 문제는 분명히 있다. 뜨거운 교육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교육관이 문제다. 무조건 좋은 점수를 받아서 소위 인기 대학, 인기 학과에 자기 자식이 입학하는 것만을 자식교육의 궁극 목표로 삼는 교육관이 문제다.
학부모가 자녀교육을 생각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식이 어떤 자질과 성품, 그리고 취향을 가지고 있느냐를 잘 살피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자기 자녀의 특성에 알맞은 삶의 방향을 찾도록 도와줘야 한다. 부모가 희망하는 삶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은 자식의 인격을 무시하는 일일뿐 아니라, 자식에게 행복보다는 불행의 덫을 씌워 주는 ‘잘못된 사랑’이다. 세상의 인기를 좇아가는 삶이 성공적일 수 없다는 것을 부모들이 이미 자신의 체험으로 알지 않는가.
인간은 다양한 특질을 가지고 태어나서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어 있다. 이러한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소위 ‘인기 있다는 삶의 방식’을 무차별적으로 자기 자녀의 교육에 적용하려는 태도는 세상의 근본 이치와도 어긋난다.
국가의 교육제도 또한 이러한 다양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균질화를 도모하게 되면, 학부모의 교육관이 올바르다고 해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의 교육이 제대로 움직여 가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올바른 교육관뿐 아니라 국가의 교육제도 또한 인간의 다양성을 살피는 방향으로 바로잡혀야 할 것이다. 그럴 때 한국인도 유대인 못지않은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명현 서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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