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군 간부 양성기관인 육군사관학교가 다음 달 1일 개교 60주년을 맞는다. 그동안 육사는 1만77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군과 사회 각계각층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
▽달라진 생도 문화=육사는 개교 이래 지금까지 흡연과 음주, 혼인을 금지하는 ‘3금(三禁)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1998년부터 여생도(58기)가 입교하면서 ‘금녀의 벽’을 허문 뒤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지난해부터 3, 4학년 생도에 대해 이성교제를 허용하고 있다.
2학년은 월 1회, 3학년은 월 2회로 제한됐던 외출 외박도 지난해부터 2학년 이상은 매주 외박을 나갈 수 있도록 했다. 또 예전엔 구내 공중전화 사용도 힘들었지만 2002년부터는 생도들의 교내 휴대전화 사용도 허용됐다.
생도 문화도 크게 달라졌다. 10년 전만 해도 하급생도는 상급생도에게 말 걸기도 힘들 만큼 강압과 지시가 주류였다. 상하급생도 간 필요 이상의 ‘육체적 정신교육’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자율과 책임, 상호존중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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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교육시스템의 도입도 눈길을 끈다. 모든 생도는 개인 노트북 컴퓨터를 지급받아 생활관(기숙사)에서 유선인터넷을 쓴다. 교수부(강의실)에서는 무선인터넷까지 사용할 수 있다. 또 수업자료는 교내 통합 포털 사이트를 통해 공지되고 대부분의 수업에 빔 프로젝터와 같은 최신 기자재가 활용된다.
이 밖에 2, 3학년 생도들은 중국과 일본에 1주일간 연수를, 4학년 생도들은 10일간 유럽이나 미주 배낭여행을 통해 견문을 넓히는 기회를 갖는다.
여생도의 활약도 눈부시다. 매년 전체 정원의 10% 비중인 여생도는 지금까지 100여 명이 졸업해 군에 복무 중이고 100여 명이 재학 중이다. 여생도는 남생도 못지않은 체력과 우수한 성적으로 군내 여풍(女風)을 주도하고 있다. 매년 여생도의 경쟁률은 30 대 1을 웃돌고 있다.
물론 육사생활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정이다. 정예 장교를 육성하는 군 조직인 만큼 4년간의 육사생활은 철저한 자기관리가 요구된다. 생도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꽉 짜인 일정에 따라 각종 강의와 체력단련,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 199학점을 이수하고 필수 영어 점수를 따야 졸업할 수 있다.
특히 가입교 후 한겨울에 받는 6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은 정식 생도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최대 관문으로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시험하는 기간이다.
육사 교장인 김선홍(육사 28기) 중장은 “앞으로 국내외 저명인사의 교환교수 임용, 군사대학원 신설 등을 추진해 21세기 군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는 세계 명문 사관학교로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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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관학교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수립될 때까지 1∼8기생 약 1800명의 사관후보생을 배출했다.
이 기간에 입교한 사관후보생들은 대부분 과거 광복군과 일본군, 만주군 등에서 군사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어서 45일∼6개월의 짧은 교육기간에도 불구하고 높은 숙련도를 보여 창군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조선사관학교는 1948년 9월 5일 국군 창설과 함께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됐고 교육과정도 6개월간 제식훈련과 화기훈련을 강화한 것은 물론 국사 영어 등 대학교육 비중도 늘렸다.
육사 이름으로 처음 모집한 생도 1기는 1949년 입교했으나 1년 과정 졸업을 1주일 앞두고 6·25전쟁이 발발해 전장에 투입됐다. 당시 육사는 4년 교육 과정의 첫 입학생인 생도 2기생도 1950년 6월 입교 20일 만에 전장에 보내고 휴교해야 했다.
육사는 전쟁 중인 1951년 1월 다시 문을 열고 생도를 받았다. 이들이 정규육사 1기라는 육사 11기다. 육사는 그 이전 조선사관학교 졸업생부터 생도 1기까지를 차례로 육사 1∼10기로 칭한다. 입학하자마자 전투에 투입됐던 생도 2기는 대다수가 전사하거나 다친 데다 지금껏 육사 기수에도 편입되지 못하고 그냥 ‘생도 2기’로 불린다.
이정린(李廷麟·육사 17기) 육사 총동창회장은 “생도 1, 2기는 한국군 현대사의 비극을 상징하는 ‘비운의 기수’로 불린다”며 “이들 외에도 수많은 육사 출신이 조국을 지키다 전장에서 산화했다”고 말했다.
육사 개교 60주년 기념행사 | ||
일시 | 행사 | 내용 |
4월 29일 | 화랑대어린이 미술대회 | 서울 경기지역 초등 4∼6년생 대상 |
4월 29일∼5월 2일 | 울릉도어린이 초청행사 | 울릉초등생 91명 초청해학교, 국회, 63빌딩 견학, 위문공연 관람 |
5월 1∼2일 | 개교 60주년 기념식 | 국방부 의장대 및 취타대 공연, 특전사 고공낙하시범,육사 60년 다큐 영상 상영, 육사 60년사 출판기념회 |
4월 30일∼5월 6일 | 해외사관생도 초청 국제심포지엄 | 9개국 생도 30명, 학술대회 및 산업시설과 전방 견학 |
5월 2∼5일 | 생도의 날 행사 | 생도대장 주관, 승화대 점화식 및 먹을거리장터, 생도대 음악회 |
5월 1일 | 국군방송 민관군 특집 위문열차 공연 | 육사 3체련장 |
■ 육사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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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이상 지속되고 있는 남북 군사 대치의 현장에서 육사 출신들은 안보의 핵심 역할을 맡아 왔다. 실제로 6·25전쟁 이후 남북 간 군사적 충돌로 많은 육사 출신 지휘관이 부하들을 이끌고 적과 맞서다 산화했다.
1960년대 베트남전 파병 때도 육사 출신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당시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 사령관으로 파병 임무를 총지휘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채명신(蔡命新) 소장은 육사 5기였다. 파병 전투부대의 소대장 상당수도 육사 출신들이었다.
5·16군사정변 이후 ‘최대 파워엘리트’로 부상한 육사 출신들은 군 요직을 장악하는 한편 정계, 경제계에도 활발히 진출해 ‘육사=출세가도’라는 공식이 생겨났다. 하지만 ‘신군부’로 불리는 육사 출신의 일부 정치군인은 1979년 12·12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군내 사조직으로 군심(軍心)을 분열시켜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한편으로 육군 3사관학교, 학군장교(ROTC) 등 다양한 군 간부 양성기관이 성장하면서 육사 출신의 독보적 위상은 계속 축소되어 온 게 사실이다.
특히 대통령이 매년 참석하던 육사 졸업식에 지난해부터 격년제로 참석하기로 한 것은 육사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 주는 단편적 사례다.
육사 출신의 한 야전지휘관은 “육사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접받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며 “육사가 미래 한국군의 주역으로 남으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키우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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