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법 黨靑충돌… 여권 분열로 이어지나

  • 입력 2006년 5월 1일 03시 03분


30일 인천 송도테크노파크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정동영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지도부의 표정이 무겁다. 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 등과 관련해 여당의 양보를 권고한 데 대해 거부 방침을 정했다. 인천=이종승 기자
30일 인천 송도테크노파크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한 정동영 의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지도부의 표정이 무겁다. 회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립학교법 개정 문제 등과 관련해 여당의 양보를 권고한 데 대해 거부 방침을 정했다. 인천=이종승 기자
靑 “고뇌어린 선택” vs 黨 “정체성 지켜야”

사립학교법 재개정 해법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정면충돌한 것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5월 지방선거에 미칠 파장을 의식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여권의 내상(內傷)은 깊어지는 양상이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이 시점에 하필 사학법 재개정 양보 문제를 제기했느냐며 의구심을 나타내는 시각도 없지 않다.

○ “고뇌 어린 선택” vs “지방선거 승부수”

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양당 원내대표와의 조찬 간담회에서 “부동산 문제가 중요하다”며 “최근 환율, 유가 요인까지 겹쳐서 만약에 부동산까지 기조가 흔들리면 경제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또 “국회 구조상 다수결만으로는 국정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며 합의가 중요하다”며 “대승적 차원에서 여야가 국정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이 문제를 풀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 측은 노 대통령의 ‘대승적 양보’ 권고가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고뇌 어린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부동산 입법 외에도 독도 문제와 관련한 동북아역사재단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고, 시간을 다투는 사법개혁 및 국방개혁 관련 입법마저 실종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게 청와대 측의 판단이다.

특히 주요 법안이 이번 4월 임시국회(회기는 5월 2일까지)를 넘길 경우 6월 임시국회에선 여야 간 17대 국회 후반기 원(院) 구성 협상으로 인해 더욱 처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의 상당수 의원은 노 대통령이 굳이 여당의 정체성과 직결된 사학법 문제를 건드린 배경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강금실(康錦實) 서울시장 예비 후보도 성명을 통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은 지켜져야 한다”며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 역으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짜고 치는’ 고도의 이중 플레이를 구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나름대로 여당에 치우치지 않는 ‘초당적 리더십’을 보여 줬다는 실리를 챙기는 한편 여당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에 반기(反旗)를 들어 핵심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부동산 입법 못해도 재개정 불가”

지난달 29일 저녁 긴급 소집된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는 전체 발언자 25명 중 70%가 사립학교법 재개정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이날 의총은 토요일 밤에 갑작스럽게 소집됐으나 90여 명이 참석했다.

의총에서 유재건(柳在乾) 의원 등 당내 온건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은 “노 대통령의 고충을 덜어 주기 위해 한나라당의 사학법 재개정안을 수용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폈다.

그러나 정청래(鄭淸來) 이미경(李美卿) 이석현(李錫玄) 임종인(林鍾仁) 의원 등은 “사학법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같은 법”이라며 “한나라당의 수정안을 수용하면 얻는 것 없이 핵심 지지층만 잃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중도 계열로 분류되던 이강래(李康來) 의원이 사학법 재개정을 강한 어조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 전체 분위기를 크게 바꾸었다고 평가했다.

당 부동산기획단장을 맡고 있는 이 의원이 “3·30 부동산 후속 대책 관련 법안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해도 사학법을 재개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이 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여당의 권고 거부에 대해 정태호(鄭泰浩)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입법 현안에 대한 고심을 말한 것이지만 여당은 여당대로 입장이 있을 것”이라며 “원내전략은 원래 당에서 알아서 해 오지 않았느냐”고 담담하게 반응했다.

○ 선거 후 ‘마이 웨이’냐, 레임덕 가속화냐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 펼쳐질 정계 개편과 개헌 등 새로운 정치 지형을 염두에 두고 탈당 등 결별의 수순을 밟기 위한 포석을 놓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은 열린우리당 내에서 주로 나온다.

노 대통령이 고수해 온 ‘당-청 분리’ 원칙을 파기한 것도 지방선거 이후를 내다보고 ‘초당적 국정운영자’란 명분을 쌓으려는 계산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여당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추구하는 당-청 분리와 초당적 국정 운영은 어쩌면 애초부터 잡기 어려운 두 마리 토끼”라며 “여당이 제동을 거는데 어떻게 초당적 국정 운영이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노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임기 후반기에 당-청이 한목소리를 내도 국정 장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당-청 갈등은 공직사회의 동요를 촉발할 수 있다.

더구나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할 경우 자연스럽게 패인(敗因)을 둘러싸고 청와대 책임론 제기와 함께 레임덕이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등’ 한 글자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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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與野 사학법 협상 쟁점

여야 사립학교법 재개정 협상의 핵심 쟁점은 ‘등’이라는 단어 하나와 관련이 있다.

개정 사학법의 개방형 이사제 조항(제14조 3항)에는 ‘학교법인은 이사 정수의 4분의 1 이상은 학교운영위원회 또는 대학평의원회가 2배 추천하는 인사 중에서 선임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한나라당은 이중 추천 주체에 ‘등’이라는 단어를 추가해 ‘학교운영위 또는 대학평의원회 등’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다른 단체나 기구도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자는 요구다. 한나라당은 이 요구만 받아들여진다면 다른 민생 법안들의 일괄 처리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사학법의 근본 취지가 무너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개방형 이사 선임 규정에 ‘빈틈’을 만들어 줄 경우 사학재단을 대변하는 각종 기구가 입맛에 맞는 사람을 추천해 외부 인사의 진입을 차단해 버릴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재단의 이해와 관계없는 외부 인사를 통해 사학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

열린우리당은 4월 임시국회 회기인 5월 2일까지 한나라당이 계속 국회 일정을 거부할 경우 다른 야당의 협조를 얻어 법안 처리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그게 여의치 않다면 지방선거에도 불구하고 5월 임시국회 소집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다. 그러나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중심당 등이 여당의 공조 요청을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한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45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사립학교개혁 국민운동본부(사학국본)’는 사학법 재개정 움직임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사학국본은 지난달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사학법 재개정 권고 소식이 알려진 직후 열린우리당사를 찾아 철야 농성을 벌였으며, 1일 전국의 열린우리당 지구당사를 항의 방문하도록 회원 단체에 긴급 지시했다. 이들은 또 이날 오전 11시 청와대 앞에서 노 대통령 규탄 집회를 벌이고, 오후 5시 반 국회 앞에서 국회 규탄 집회도 열 계획이다.

반면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송영식(宋永植) 사무총장은 “노 대통령이 사학법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을 바꾼 것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이라며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의 사학법 재개정 권고를 즉각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사학법인연합회는 조만간 운영위원회를 열어 사학법 재개정을 촉구할 예정이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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