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선홍]“아빠, 어린이날만이라도 쉬게 해주세요”

  • 입력 2006년 5월 2일 02시 59분


#2006년 3월 19일. 일요일. 제목: 학원

“학원 다니는 것이 힘들다. 내가 힘든 이유는 공부 때문이 아니다. 내가 숙제 같은 것은 잘 까먹기 때문에 숙제를 했는데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내 가슴을 죈다. 그리고 항상 적응!!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원래 10시에 자야 하는데, 숙제가 많다 보니 밤 12시쯤에 자서 이제 몸에 이상이 온다. 그래도 어쩌랴! 적응해야지. 적응만 하면 잘될 것인데!! 파이팅!!”

#2006년 4월 27일. 목요일. 제목 : 아버지 좀 쉬게 해 주세요

“저녁 9시에 집에 들어와서도 숙제 때문에 12시를 넘기고, 낮에도 학교와 학원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입안에 염증이 생기고 피곤한 일과가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학교 친구들도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잘 적응해야 된다. 하지만 초등학교 마지막 ‘어린이날’인 5월 5일만이라도 쉬고 싶다.”

지난달 28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블로그에 자신을 ‘40대 후반의 가난한 말단 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이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의 일기라며 소개한 글이다.

아버지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들은 석 달 전부터 보습학원에 다닙니다. 나는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일기장을 볼 수 있도록 미리 아들과 약속을 해 두었습니다…일기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버지는 “그런데 최근 아들의 일기장이 이상하다”고 걱정한다.

“아들의 일기장을 덮으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 와서 한숨을 크게 쉽니다…그러나 대부분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데 그냥 예전처럼 집에서 공부하게 하는 것은 아들의 성적을 뒤처지게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듭니다.”

이 글은 1일 오후 현재 50만 명이나 되는 누리꾼이 읽었다. 공감과 격려의 댓글도 수천 개나 달렸다.

아들과 밤늦게 대화를 나눴다는 아버지는 “지금 아내는 아들을 무릎에 뉘고 입안 염증에 연고를 바르고 있습니다…‘어린이날’에라도 쉬고 싶다는 아들을 계속 학원에 보내야 하는 것인지, 참으로 가슴이 아리고 답답합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글은 맺었지만, 쓴 사람이나 읽은 사람의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듯하다.

박선홍 디지털뉴스팀 su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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