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캠퍼스에 ‘헬리콥터 부모’가 뜨고 있다

  • 입력 2006년 5월 2일 15시 42분


“우리 애가 몸이 아파서 리포트를 대신 가져왔어요.”

서울대 사회대 김모 조교는 최근 학과사무실로 찾아온 한 1학년 학생의 어머니에게 당황스런 부탁을 받았다. 제출기한이 임박한 이 학생의 교양 수업 과제를 담당 교수에게 대신 전해달라는 것.

그는 “부모님이 대학까지 숙제를 직접 들고 오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요즘 대학생들이 어릴 때나 하던 의존 습관을 대학생이 돼서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여대의 한 교직원은 한 달 전 교무과로 부서를 바꾼 뒤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을 직접 접하고 깜짝 놀랐다.

그는 “부모님들이 휴학원서, 복학원서 등의 서류처리를 비롯해 학교의 모든 일정을 직접 문의하고 처리하실 때가 많다”며 “전화기 너머로 ‘우리 애가 아직 어려서요.’ 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정말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에서 교환학생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국제교류교육원에도 학부모들이 자주 등장한다.

국제교류교육원의 문 모씨는 “몇몇 극성스런 어머님들은 아예 팀을 꾸려서 단체로 방문하기도 한다”며 “학생들이 직접 자료를 조사하고 서류를 접수할 수 있는데도 학부모들이 과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헬리콥터’ 부모에 ‘응석받이’ 대학생 = 28일 서울 소재 대학들에 따르면 수년전부터 학부모들이 자녀의 수업과 행정에 개입하고 있으며 저학년 일수록 심하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의 주위를 ‘항상 맴돌고’ 있다는 뜻의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s)라고 불린다.

‘헬리콥터 부모’는 자녀의 수강신청은 물론 과제물 챙기기, 진로결정 등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응석받이’ 자녀는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대학 관계자들의 얘기다.

‘헬리콥터 부모’는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열성 부모들이 자녀의 개인 생활에 사사건건 개입한다고 해서 붙여진 신조어.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미국의 ‘헬리콥터 부모’가 자녀의 직장에까지 등장하고 있다”며 “구직자의 부모들이 기업의 채용담당자를 찾아가 자신의 자녀를 홍보하고 심지어 연봉 협상에까지 직접 나서는 사례가 많아졌다”고 전했다.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지도 지난해 말 “많은 젊은이들이 독립하지 않고 부모에 얹혀사는 이유는 높은 집세와 학자금 융자가 아닌 ‘헬리콥터 부모’ 때문”이라는 분석 기사를 내보냈다.

아동심리학자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 독립 필요” = 이런 현상에 대해 서울대 곽금주 교수(아동심리학)는 “과거에 비해 경제력이 신장되고 양육하는 자녀수가 감소함에 따라 최근 부모들의 과보호 현상이 많이 나타나게 됐다”며 “특히 사회에 진출하지 못한 고학력자 출신의 어머니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자녀에게 모든 열정을 쏟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가정은 자녀가 성인이 되면 우울증에 빠지는 부모도 있고 자녀들의 결혼 연령이 늦어지기도 한다”며 “부모와 자녀는 그들의 관계를 재조명하고 둘 다 심리적인 독립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지난해 2학기부터 새내기 대학생들을 위해 ‘흔들리는 20대’라는 교양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이 수업에서 학생들을 ‘흔들이’라고 부른다.

그는 “친구관계나 학과 선택 등을 대학에 와서 비로소 고민하고 혼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며 “학생들이 자아정체감을 찾고 독립된 인간으로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데 교육의 목표를 뒀다”고 말했다.

김수연 동아닷컴 기자 s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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