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세 총각 장가갑니다”…영등포 교통장관 임진국 할아버지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영등포구 교통부 장관’ 임진국 할아버지는 90세에 독신생활을 청산하고 8일 차갑선 할머니와 화촉을 밝힌다. 사진 제공 영등포경찰서
‘영등포구 교통부 장관’ 임진국 할아버지는 90세에 독신생활을 청산하고 8일 차갑선 할머니와 화촉을 밝힌다. 사진 제공 영등포경찰서
“이제 의지할 사람이 생겼으니 오래오래 살아야지….”

‘영등포구 교통부 장관’ 임진국(90) 할아버지가 8일 화촉을 밝힌다. 평생 혼자 살아온 생활이 이제 끝나게 됐다.

임 할아버지는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27년간 매일 오전 7시면 어김없이 교통정리 봉사대원 옷을 입고 나와 교통정리를 해 ‘영등포구 교통부 장관’으로 불리는 지역의 유명 인사다.

그는 1964년 서울 종로구 을지로4가 청계천 인근의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던 초등학생 3명이 차에 받혀 숨진 것을 본 뒤부터 교통봉사에 나섰다. 종로구 일대에서만 15년간 교통봉사를 했으니 호루라기를 들고 나선 지 40년이 훨씬 넘었다.

임 할아버지는 4세 때 일본인 부부의 양자가 돼 일본에 건너갔다. 광복 이후 귀국한 그는 1950년 인천상륙작전 때는 미8군 소속으로 북파 전투에 참가했다가 북한군에 잡혀 포로 교환 때 고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고국에서 그를 반겨 주는 사람은 없었다. 형과 동생들은 전쟁으로 모두 숨졌고 여동생 두 명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 버린 뒤였다.

“전쟁이 끝나고 일본에 가 봤지만 양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양어머니는 재혼해서 갈 곳이 없었지.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나 혼자 먹고살기도 힘들었어.”

그는 굳이 결혼해서 남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

임 할아버지는 1평 반짜리 쪽방에서 정부보조금 등 30여만 원이 월수입의 전부일 정도로 어렵게 생활하면서 가족이 없는 외로움을 교통봉사활동으로 달랬다.

임 할아버지의 생활에 변화가 생긴 것은 지난해 9월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부터. 왼쪽 팔다리에 마비가 와 매일 교통봉사활동을 하지 못하고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외로움이 찾아왔다.

쓸쓸하게 지내던 임 할아버지에게 인생의 첫 배필인 차갑선(75) 할머니를 소개해 준 이는 양아들의 인연을 맺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 온 영등포경찰서 역전파출소 소속 김덕기(51) 경사였다.

임 할아버지 쪽방의 길 건너편 쪽방에 차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10여 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4년째 쪽방 생활을 하는 차 할머니는 참한 성격으로 이웃 노인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임 할아버지는 평소 음식 등을 나눠 주는 차 할머니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김 경사는 임 할아버지의 이웃에게서 ‘외로운 사람들끼리 의지하며 살 수 있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듣곤 3월 초 차 할머니의 마음을 떠봤다. 차 할머니는 쑥스러워하면서 승낙했다. 이후 이 연인들은 두 달 간의 짧은 열애 끝에 혼약하기로 했다.

임 할아버지와 차 할머니가 결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등포경찰서와 영등포 지하상가 번영회는 5평 남짓한 신혼방과 결혼 음식, 예복 등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어버이날인 8일 역전파출소에서 열리는 결혼식의 주례는 정철수(丁喆秀·43) 영등포경찰 서장이, 사회는 코미디언 김정렬(45) 씨가 맡기로 했다.

차 할머니와의 사랑 때문인지 4월 초부터 기력을 회복해 교통봉사활동에 다시 나선 임 할아버지는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서로 기대고 의지하면서 남은 삶을 즐기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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