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여기서 할머니들 한글을 가르쳐 준다면서요?”
“예, 어서 오십시오.”
“제 집사람도 좀 배우게 하려고요.”
커피 한 잔을 드시면서 자초지종을 말씀하셨다. 부인도 70세가 넘었는데 지금까지 읽고 쓰지 못한 채 사셨다고 했다. 올해 마을에서 20km가량 떨어진 정읍 읍내까지 다니며 한글을 배웠는데 5일가량 다니다 중단했다고 한다. 수준이 맞지 않아 스트레스만 받았다는 것. 그런데 우리 학교 한글 공부반의 ‘평생교육’이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것을 서울에 사는 친척이 보고 알려 주었다고 했다.
우리 학교가 ‘평생교육 취미활동 교실’ 10여 개 반을 운영한다는 내용은 지난해 방송 및 신문 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소개됐다. 그런데 같은 면에 살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히 모르고 계셨다고 한다.
학교 홍보를 학생들을 통하거나 언론 매체에만 의지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다. 옛날처럼 동네에 벽보 안내문을 붙이고 주요 길목에 현수막이라도 설치했으면 누구나 다 알 수 있었을 것이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필자가 농촌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안일을 하는 또래 아이들이 20∼30%는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이 40%는 됐던 것 같다. 그러니 필자보다 20여 년 앞선 세대는 말할 나위 없이 교육을 받을 기회가 훨씬 적었을 것이다. 특히 여성들이야 오죽 했을까.
며칠 후 그 할아버지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오셨다. 할머니는 약간 마음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남편과 딸의 권유에 어쩔 수 없이 오셨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수영반과 한글반에 등록하셨다. 딸도 수영반에 등록했다. 할머니는 대필해 주는 딸의 능숙한 글씨 쓰기를 보면서 과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엄마, 잘만 하면 1주일 내내 학교에 다녀도 되겠네.”
13개 반의 취미활동 교실이 있으니 적당한 과정을 골라서 매일 다니라는 권유다.
“이 나이에 공부가 된다냐?”
“아버지, 어머니가 공부하실 때 잘 가르쳐 주세요. 이것도 모르냐고 구박하시지 말고요.”
“오냐, 알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앞세우고 한글 교실로 향했다. 서예반에 다니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향학열도 귀하게 느껴지고 부인을 위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직접 두 번씩이나 학교로 찾아오시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교실에 도착하자 교실 안 30여 명의 할머니들이 열렬한 환영의 손뼉을 치셨다. 부디 스트레스 받지 않으시고 재미있게 다니시길 바랐다.
아직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평생을 기억력에 의존하면서 남에게 글자를 물어가면서 답답하게 사신 분들이 의외로 많다. 요즘 교육기관, 공공기관, 종교단체, 봉사단체 등에서 평생교육을 하는 곳이 적지 않다. 노인들이 배우기가 어디 그리 쉬울까. 좀 더 잘 배울 수 있도록 시설이나 학습 자료, 우수한 강사 확보 등을 위한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
이학구 전북 원평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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