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입양]개그우먼 이옥주 씨 셋째 얻던 날

  • 입력 2006년 5월 9일 03시 00분


“반갑다 아가야”개그우먼 이옥주 씨(가운데)가 8일 남편과 함께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 자신들이 입양할 예림이를 만났다. 지난해 태어난 예림이를 돌본 위탁모 전영숙 씨(오른쪽)는 “좋은 양부모를 만나 기쁘다”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김재명 기자
“반갑다 아가야”
개그우먼 이옥주 씨(가운데)가 8일 남편과 함께 서울 마포구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아 자신들이 입양할 예림이를 만났다. 지난해 태어난 예림이를 돌본 위탁모 전영숙 씨(오른쪽)는 “좋은 양부모를 만나 기쁘다”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다. 김재명 기자
《11일은 제1회 ‘입양의 날’. 가정의 달(5월)에 한 가정이 한 아이를 입양하자는 취지를 지니고 있다. 이날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시집간 개그우먼 이옥주(37) 씨가 가슴으로 셋째 아이 예림(미국명 재클린·생후 9개월)을 낳을 예정이다. 9개월간 예림이를 키워 온 위탁모 전영숙(49) 씨가 이 모습을 지켜봤다.》

##장면1=지난해 11월 24일 오전 11시. 서울 양천구 신월동 전영숙 씨의 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예림이의 백일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전 씨는 예림이를 목욕시키고 예쁜 옷을 입혔다. 사과, 바나나, 케이크 등 음식도 마련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 예림이를 축복했다.

예림이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전 씨의 품에 안겼다. 8년 전 위탁모로 일하기 시작한 전 씨가 받아들인 25번째 아이다.

예림이는 ‘울보’다. 예림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씨뿐이다. 그는 예림이가 울 때마다 등에 업고 동요를 불러 주기도 하고 엉덩이를 토닥거려 준다.

그는 아기가 없어질까 봐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에 나갈 때도 꼭 문을 잠근다. 전 씨는 “다른 아기보다 키우기 힘들었지만 예림이에게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늘 자기 전 예림이를 위해 기도했다.

“예림이가 좋은 양부모를 만나게 해 주세요.”

##장면2=드디어 소원이 이뤄졌다. 전 씨는 지난달 21일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예림이가 11일 미국으로 떠나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8일은 예림이의 양부모를 만나는 날이다. 전 씨는 7일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입양 통보는 늘 우울증을 부른다. 양부모에게 줄 예림이의 사진과 건강기록부를 정리하다 보니 예림이와 함께한 9개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위탁기간은 국내 입양은 한 달, 해외 입양은 여섯 달 정도 걸린다. 예림이는 다른 아이보다 전 씨와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예림이는 백일 이후 잘 웃는 아기가 됐다. 요즘은 무엇이든 입에 물고 벽을 붙잡고 서서 조금씩 걷기도 한다.

예림이도 눈치를 챘는지 며칠째 전 씨의 품에서 떠나지 않으려고 한다. 우는 횟수도 늘었다.

전 씨는 돌봐 온 아이가 해외로 갈 때 절대 공항에 나가지 않는다. 자신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기를 보내는 일은 너무 힘들다. 간신히 잠이 든 예림이의 얼굴을 보니 새 생활에 적응해야 할 예림이가 안쓰럽기만 하다.

##장면3=지난해 12월 21일 미국 뉴멕시코 주. 한국 홀트아동복지회가 전화로 “예림이에 대한 모든 서류 절차가 끝났습니다”고 알려 왔다.

“드디어 내 딸이 생겼구나.”

이옥주 씨는 너무 기뻐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여기저기 말하고 싶고 떠들어 대고 싶다. 처음 연애하던 기분이 이랬던가 싶다”는 글을 남겼다.

남편은 8년 전 결혼하기 이전부터 입양하자고 말했지만 “하나를 키우기도 힘들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첫째(7)와 둘째(3)를 낳은 뒤 주변에서 입양한 아이와 행복하게 지내는 가족을 보니 점차 마음이 바뀌었다.

입양 의사를 밝히자 이웃과 친척들이 한결같이 축하의 말을 건넸다. 입양은 미국에선 익숙한 ‘출산 문화’다. 이 씨는 자연스레 공개 입양을 택했다. 그는 2년 동안 까다로운 입양 절차를 거쳤다. ‘재클린’이라는 예쁜 이름을 미리 지어 놓았다.

##장면4=8일 오전 10시 반. 이 씨와 그의 남편 토머스 고스라우(39) 씨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사무실을 찾았다. 이 씨는 “예림이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레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며 초조해 했다.

잠시 후 전 씨가 예림이를 업고 나타났다.

“너구나. 세상에….”

이 씨의 첫마디였다. 그는 예림이의 환한 얼굴을 보며 활짝 웃었다.

이 씨의 여동생이 “언니 어렸을 때와 꼭 닮았네”라고 말했다.

이 씨는 예림이를 위해 손수 만든 곰인형을 꺼냈다. 하지만 낯선 얼굴을 본 예림이는 ‘울보’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 씨는 전 씨에게 카네이션 화분을 주며 “예림이를 건강하게 키워 주셔서 감사하다. 예림이가 크면 어버이날 꼭 카네이션을 들고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전 씨는 예림이의 첫돌 때 입을 한복을 선물했다.

이 씨는 11일 예림이를 최종적으로 데려가기로 하고 전 씨에게 일단 다시 맡겼다.

“어린 나이에 어른도 감당하지 못할 이별을 몇 차례나 겪으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제가 더 사랑해야죠.”(이 씨)

“해외 입양이라도 한국인 엄마에게 가니 다행이에요. 그래도 참 많이 서운하네요.”(전 씨)

어느새 예림이는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전 씨의 등에 업혀 잠을 자고 있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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