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살했을까=검찰은 박 전 국장을 상대로 현대차그룹의 양재동 신사옥 증축 인허가와 관련해 로비를 받았는지에 대해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국장은 현대차그룹이 증축 허가를 받아낸 2005년 4월 29일 증축 허가를 결정하는 서울시 건축심의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검찰은 일단 박 전 국장이 거액의 금품을 전달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당시 심의위원이던 서울시 건축과장과 함께 2005년 7월 현대차그룹으로부터 그랜저XG 승용차를 730만 원 할인받아 산 사실이 드러났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박 전 국장이 산 차는 시승용이었거나 출고 과정에서 흠이 난 판촉 차량”이라며 “판촉 차량을 20% 정도까지 할인해 판매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자살 이유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이 때문에 그가 검찰 조사에 심적인 압박을 느껴 자살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8일부터 최근까지 약 2주 동안 5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결혼기념일인 10일에도 조사를 받았다. 박 전 국장은 14일 지인들에게 “검찰 조사를 받다가 자살한 안상영(安相英) 전 부산시장의 처지가 이해가 간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국장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의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이 커지자 막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같은 추정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수사 상황 및 전망=검찰은 1390여억 원의 현대차그룹 비자금 중 일부가 양재동 쌍둥이 빌딩 증축 인허가 과정에 로비자금으로 쓰인 단서를 확보하고 조사해 왔다.
검찰은 현대차그룹이 2004년 11월 사옥을 증축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농협 하나로마트의 자투리땅을 사들인 뒤 다음 달 정대근(鄭大根·구속) 농협중앙회 회장에게 3억 원을 준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현대차그룹이 2005년 4월 말 서울시로부터 증축 허가를 받아내는 과정에 박 씨가 로비를 받았는지, 그 과정에 개입했는지 등을 조사했다. 현대차그룹은 증축 허가를 받기 2, 3주 전부터 미리 공사에 들어가 각종 의혹이 제기돼 왔다.
검찰은 박 전 국장이 현대차그룹의 로비자금을 서울시 고위 관계자 등 윗선에 전달했는지도 추궁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박 전 국장이 로비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면 검찰 수사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검찰은 서울시뿐만 아니라 2004년 12월 건설교통부가 ‘도시계획시설의 결정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유통업무시설이던 쌍둥이빌딩 부지에 연구시설 증축이 가능하도록 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박 전 국장의 자살로 검찰은 서초구, 서울시, 건교부 관계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반응=서울시는 주택국장으로선 처음으로 명예로운 정년을 맞이했던 박 전 국장의 죽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민원이 많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주택 분야에 오랫동안 일했으면서도 비리 등에 휘말리지 않고 정년퇴직했기 때문에 후배 공무원들의 충격은 큰 듯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모든 인허가 과정은 개정된 법 규정에 따라 이뤄져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검찰, 종합작품 만들려고 수사 확대, 유능한 변호사도 중수부 못 이길것”▼
■ 朴 前국장 유서 요지
다음은 유서의 요지.
검찰이 수사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건물 증축과 관련된 종합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서울시의 책임을 무리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금융거래 명세를 조사하여 이미 본인이 현대자동차나 설계회사로부터 금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을 괴롭혀서 항복을 받아낼 욕심으로 저와 돈거래를 한 처남은 물론 처남과 돈거래를 한 사람에게까지 계속 수사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검찰이 본인을 기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변호사가 아무리 유능하고 사법부가 공정하다 해도 대검 중수부를 이길 수가 없다고 판단됩니다.
주변의 친지들에게 돌아갈 피해를 줄이고 평생을 자랑스럽게 지켜 온 서울시청 동료 후배들의 명예를 중히 여기며,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가족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을 가렵니다. 이 글을 가족과 친지, 평생 동지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2006년 5월 14일 새벽에
▼朴 前국장은 누구…현대차 사옥 인허가 심의위원장 맡아▼
박석안 전 서울시 주택국장은 1974년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으며 이듬해 기술직 7급으로 서울시에 발을 들여 놓은 이래 30여 년간 서울시 주택국 건축과장, 주택국장 등 주택건설 분야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지난해 말 정년퇴직한 뒤에는 대기업 S사의 고문으로 활동해 왔다.
서울시 관계자는 “박 전 국장은 평소 ‘주택 분야의 공직자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이런 소신을 갖고 있던 그가 검찰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구 도시관리국장으로 재직할 때는 삼성동 현대 아이파크 건립을 추진했고 시 주택국장 시절에는 뉴타운 개발을 지지하며 도심 낙후지 재개발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해 1∼4월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신사옥인 연구개발(R&D)센터 인허가 절차가 진행됐을 당시 주택국장이었다. 주택국장은 시 건축심의위원회 위원장 겸 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을 겸하도록 되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 17일 오후 2시. 02-3410-6916
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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