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報 독자인권위 좌담]주제: 여성 정치인 보도

  • 입력 2006년 5월 25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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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여성 정치인 보도’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본보 독자인권위원회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윤영철 위원(왼쪽부터)이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에서 ‘여성 정치인 보도’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여성 정치인에 대한 보도가 업무 수행 능력이 아니라 가부장적 시각 또는 외모, 옷차림 등 가십성에 치우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5·31지방선거에 나선 여성이 전체 후보자의 11.6%로 4년 전 선거 당시의 3배를 넘어섰고, 특히 제1야당의 대표와 국무총리,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여성인데도 이들에 대한 보도 수준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본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2일 김일수(고려대 법대 교수) 위원장과 윤영철(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이지은(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최현희(변호사)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여성 정치인 보도’를 주제로 좌담했다.

사회=육정수 본보 독자서비스센터장》


―먼저 여성 정치인 관련 보도에서 나타나는 구체적인 문제를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 원인도 함께 짚어 봤으면 합니다.

▽김일수 위원장=여성의 정치 참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여성 정치인에 대한 언론 보도는 여전히 호기심 충족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인간 평등, 양성 평등의 사회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정치 분야는 아직도 변화의 초창기 형태를 유지하는 형국이지요. 언론 보도도 본질적 의미를 짚기보다는 표피적이고 감각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현희 위원=강금실 서울시장 후보를 가수 이효리에 견주어 ‘강효리’라고 표현하는 것부터 거슬립니다. 연예인에게는 연예인의 영역이 있고 정치인에게는 정치인의 영역이 따로 있지 않습니까. 가령 남성 정치인을 배우 장동건에 빗대어 ‘×동건’이라고 보도하는 사례는 없잖아요. 연예인은 대중을 기쁘게 하는 엔터테이너 기능을 하는데, 전혀 역할이 다른 정치인을 여기에 접목하다 보니 유권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지나 않을지 우려됩니다.

▽이지은 위원=강 후보의 보라색 의상에 관한 보도 역시 표피적으로 드러나는 색깔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여성 정치인이 적어 눈에 잘 띈다고 해서 남성 정치인보다 지면을 선정적으로 더 할애하는 것에도 불공정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번 지방선거의 경우 비례대표를 제외하면 여성 후보 비율이 6%를 밑도는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여성 시대’를 유난히 강조하는 보도의 영향으로 국민은 실제와 다르게 여성 정치인이 훨씬 많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거든요.

▽윤영철 위원=여성 정치인을 어머니로서의 역할이나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판단하려는 경향도 두드러집니다. 한명숙 국무총리를 ‘현모양처형’이라고 강조한 것도 주변적 피상적 보도에 불과할 뿐 정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느낌입니다. 여성 정치인에게 흔히 ‘여성 최초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 역시 정책 입안 또는 수행 능력과는 무관하다고 봐야지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어쩌다 바지를 입으면 ‘전투복’이라고 의상에 투쟁적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도 지나친 보도 행태입니다.

▽김 위원장=박 대표의 경우 메모를 위해 늘 예쁜 수첩을 갖고 다닌다고 해서 ‘수첩공주’라고 칭했지요. 메모는 정확성과 신중성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런 보도가 편향된 시각을 자극하지는 않을는지요.

―그렇다면 여성 정치인에 대한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 제시해 보기로 하지요.

▽최 위원=남녀평등의 개념은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해서는 안 된다’로 요약된다고 봅니다. 언론은 남녀의 차이점만 부각시키거나 여성성(性)을 단순한 흥밋거리로만 다루지 말아야 합니다. 여성 정치인 특유의 시각과 감각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정책 입안의 차이를 부각한다면 활동 영역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성 할당제 등의 도입으로 여성의 사회 참여가 일반화되는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언론의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배려가 요구됩니다.

▽윤 위원=1980년대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민주당의 게리 하트 씨는 미남인 데다 유능하고 말도 잘한다는 점에서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연상시킬 정도였지요. 그런데 그는 여성 스캔들로 후보에서 중도 사퇴하고 말았습니다. 1960년대의 케네디 대통령은 여성 문제가 제기되고도 그냥 넘어갔지만 1980년대의 하트 씨는 정계를 영원히 떠나야만 했던 것이지요. 이는 미국 사회의 규범이 20년 동안 바뀌었다기보다 정치부의 여성 기자 비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여성 정치인에 대한 가부장적 시각은 남성 기자가 지배적일 때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남성 기자에게 바른 정치 보도를 기대하기보다는 여성 기자가 더 많이 언론에 진출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이 위원=국민이 여성 정치인을 직접 만나고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가장 바람직하겠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보도를 통해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론의 균형감각은 매우 중요합니다.

▽김 위원장=정치가 양성 평등 사회로 진입하는 기간을 단축하자면 미국의 ‘소수자 보호 정책’과 같은 방식을 과감하게 도입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리의 사회발전단계는 이제 남성적인 능률 위주가 아니라 여성적인 문화적 품격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가정의 살림꾼이 예로부터 곳간의 열쇠를 쥐고 춘궁기를 이겨 나가는 지혜를 발휘한 어머니였듯이 여성의 장점을 통해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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