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준우]소통이 먼저다

  • 입력 2006년 5월 26일 02시 59분


“학교에는 콜센터가 없나요?”

딸을 초등학교에 보내는 한 학부모는 “자식 문제로 학교에 물어보고 싶은 일이 있어도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물론 이 학부모는 학교가 상품을 팔기 위해서 소비자와 상담할 통로를 만들어야 하는 기업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 아이의 담임교사를 찾아가는 방법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식 가진 죄인이라고 하던가. 학부모는 선생님 앞에 서면 작아지는 걸 느낀다.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까 망설이고, 직접 찾아가려다 포기할 때도 많다. 이 때문인지 별것도 아닌 문제-당사자에겐 항상 큰 문제지만-로 속앓이를 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최근 ‘간 큰 학부모’가 등장했다. 충북 청주시 H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을 무릎 꿇린 학부모 K 씨의 이야기다. 그는 교권(敎權)을 짓밟았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청주교육청과 교원단체가 자신을 수사기관에 고발하자 ‘구속되면 내 자식은 누가 키우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콩알만 해졌다고 한다.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봤다. K 씨는 17일 담임교사에게 학생 체벌 등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고 학교장을 면담했다. 학교장은 이 자리에서 책임지고 지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후 K 씨는 다른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다 이 교사에 대한 불만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집단행동이 시작됐다. K 씨 등 학부모 8명은 17일 밤 전화를 걸어 방문 약속을 하고 교사의 집으로 갔다. 이야기는 잘 되지 않았다. 한 학부모가 ‘학생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16개 요구사항을 담은 항의문을 들고 18일 학교를 찾았다. 학부모가 집단으로 항의하는 와중에 이 교사는 무릎을 꿇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돼 문제가 커지자 K 씨는 사과문을 들고 학교를 다시 찾았지만 학교장은 ‘사과 받아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는 이유로 면담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들은 거친 언어와 집단 압박이란 폭력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런 방식은 어느 사회에서나 환영받지 못한다. 사과문도 이런 자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이들에겐 믿을 만한 의사소통의 통로가 없었다. H초등학교는 학교나 교사에게 불만이 있을 때 어떤 식으로 의견을 전달하라는 안내를 학부모에게 한 적이 없다. 이 학교 측은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왔다고 이야기하지만 학운위가 그런 기능에 충실하다고 믿는 학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유네스코의 ‘교사의 지위에 관한 권고’는 학생을 위해 교사와 학부모는 긴밀히 협력하려는 노력을 최대한으로 해야 하며, 교사의 전문적 책임은 학부모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부와 교원단체는 이 권고의 뒤쪽 대목에 더 관심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학생 교육 및 교권보호법’(가칭)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있어도 ‘교사 학부모 협력법’을 만든다는 말은 없다.

학부모 단체들도 법적 대응을 할 생각이어서 이 사건은 법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하지만 판결이 소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는가. 교육 당국이 적극적으로 소통의 문화를 조성하지 않으면 이와 비슷한 사건은 어느 학교에서나 다시 터질 수 있다.

하준우 사회부 차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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