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종학]잘못된 교육정책 ‘교권침해’ 키운다

  • 입력 2006년 5월 30일 03시 05분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전인교육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이해가 상반되는 경쟁과 대립의 관계가 아니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협력자로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학생들의 장래를 위하여 함께 고민하는 관계여야 한다.

그런데 최근 학부모 앞에서 초등학교 여교사가 무릎을 꿇는가 하면 중학교 여교사가 제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의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교육 당국은 앞으로 교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면 학교와 교육청이 함께 대응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만약 학부모에 의한 교사 폭행이 있으면 즉각 경찰에 고발하도록 교육청에 지시했다. 필요하면 ‘교권 법률지원단’에 법률 자문을 하도록 했다. 또 ‘사건’을 은폐하거나 보고를 늦게 하면 학교장을 엄중 문책하기로 했다.

교육 당국의 이 같은 대응에 대해 시대적 교육적 분석이나 파악이 없는 졸속 방안이라는 아쉬움을 느낀다. 시국 사범이나 불법 폭력 시위에 대한 대응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이처럼 조건반사식 대응 방안이 나오는 이유는 교육의 전문성과 경륜을 도외시해 온 현행 교육 정책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랜 기간 교단에 서 온 현직 교장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처럼 ‘교권 확립’만을 외치던 시대는 지났다. 지식혁명시대의 교사상은 과거의 지식 전달자로서의 교사상과 구분될 수밖에 없다. 요즘 학생들은 교사를 통해서가 아니라도 지식과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이제 교사는 ‘지식 전달자’로서의 권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고 학습 의욕을 북돋우며 인생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해 새로운 형태의 권위를 창출해야 한다. 교권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임을 교사들도 알아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은 과거의 전통적인 권위가 무너졌다고 교사를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해 교사 학부모 학생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관심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단위 학교장에게 전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오히려 학교장의 문제 해결 능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많은 학교장이 교육청에 보고를 늦추거나 하지 못할 때는 무슨 사정이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은폐 및 지연 보고 시 엄중 문책하겠다는 방식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학교장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움을 주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셋째, 여러 교원단체가 생기고 교사집단이 이익집단화돼 감에 따라 교장의 역할도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이러한 때 교육인적자원부, 교육혁신위원회, 교육개발원이 함께 추진 중인 ‘교장공모제’는 교장의 권한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 교장의 권한을 강화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교장을 정치력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자리로 전락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번 교권 침해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여교사가 많은 국민의 성원에 힘입어 다시 제자를 사랑으로 가르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관련 학부모의 자녀 학생들에 대해서도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들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어떤 의미로든 또 다른 피해자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학교에서 소외되지 않고 이번 충격을 이겨 내고 다시 밝고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학교와 학부모가 더욱 세심하게 관심과 배려를 다해 줄 것을 두 손 모아 당부드리고 싶다.

배종학 전국초중고교장협의회 회장·서울 신답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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