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루어진다]제주도여행 소원 이룬 ‘코시안 가족들’

  • 입력 2006년 6월 3일 03시 00분


지난달 26일 제주 서귀포시 여미지식물원을 찾은 성훈이(왼쪽에서 두 번째)와 한풍이(오른쪽에서 두 번째)네 가족이 자원봉사자인 김범준(오른쪽) 씨와 함께 잔디밭을 달리며 이방인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있다. 제주=강병기  기자
지난달 26일 제주 서귀포시 여미지식물원을 찾은 성훈이(왼쪽에서 두 번째)와 한풍이(오른쪽에서 두 번째)네 가족이 자원봉사자인 김범준(오른쪽) 씨와 함께 잔디밭을 달리며 이방인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있다. 제주=강병기 기자
지난달 25일 제주공항에서 한국야쿠르트 직원들이 코시안 가족을 환영하며 꽃다발을 걸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야쿠르트
지난달 25일 제주공항에서 한국야쿠르트 직원들이 코시안 가족을 환영하며 꽃다발을 걸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야쿠르트
정진선(36·여) 씨는 지난달 15일 경기 안산시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코시안의 집’으로부터 제주도 여행의 꿈이 이뤄진다는 얘기를 듣곤 마음이 들떴다.

㈜한국야쿠르트의 ‘사랑의손길펴기회’가 주관하고 ‘한국메이크어위시(Make-A-Wish)재단’과 본보가 함께하는 ‘꿈은 이루어진다’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달 25∼27일 코시안(한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2가족과 저소득층 7가족에게 제주도 여행 기회가 주어진 것.

여행 당일 정 씨는 아들 정성훈(13) 군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방글라데시인인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정 군은 정신지체장애 3급으로 7세 수준의 지능을 갖고 있으며 매우 내성적이다.

정 군은 태어난 직후부터 보정용 안경을 쓰지 않으면 눈이 한가운데로 몰리는 병도 앓고 있다. 또 피부색이 검어 친구들은 “아프리카에서 왔느냐”며 정 군을 따돌리기 일쑤다.

정 씨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서 일하다 만난 스리랑카 출신 외국인근로자 닐 삼바트(31) 씨와 2005년 3월 재혼했다. 삼바트 씨는 2003년 한국에 와 악착같이 일했지만 월 50만 원도 안 되는 임금과 사장의 폭력에 견디다 못해 일을 그만두고 2004년 이 센터를 찾았다.

삼바트 씨는 “결혼할 때 돈이 없어 서울의 놀이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으로 신혼여행을 대신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삼바트 씨 부부는 하루 10시간이 넘게 함께 일해 한 달에 150여만 원을 벌기 때문에 가족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생애 첫 가족여행에서 삼바트 씨 가족은 푸른 바다와 야자수 등 이국적 풍경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들은 드라마 ‘올인’ 촬영지인 섭지코지와 여미지식물원 등을 둘러보며 연방 탄성을 질렀다. 제주도의 모든 모습을 담으려는 듯 정신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사랑의손길펴기회 자원봉사자들은 “신혼여행을 오신 것 같다”고 말을 건넸다.

삼바트 씨는 열대식물을 보며 “고향에서 흔한 나무들을 보니 마치 집에 온 것 같다”며 눈물을 훔쳤다.

정 군은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하지만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고 자원봉사자들과 어울리면서 정 군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아졌다. 정 군은 다른 코시안 가족인 베트남 출신 응우옌티응옥꾸이(40·여) 씨의 아들 손한풍(10) 군을 비롯해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들과 장난을 치며 섬이 떠나갈 듯 웃었다.

이날 밤 정 군은 장기자랑 시간에 가장 예쁜 ‘여장 어린이’로 뽑혀 난생 처음 주인공이 됐다. 정 군은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랑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김범준(29·한국야쿠르트 서울 강북지점 성북영업소 종암직영점) 씨는 “일이 바빠 처음엔 참가를 망설였다”며 “나를 삼촌처럼 따르는 아이들을 보며 외국인근로자와 혼혈인도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할 가족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삼바트 씨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이상한 시선을 보내는 한국 사람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면서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 내가 외국인이란 사실을 잊은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자원봉사 김범준 - 문재근 씨▼

“처음엔 말 한마디 안하고 뒤로 숨던 코시안 아이들 웃음 찾은 모습에 보람”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지난달 27일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내린 정진선 씨는 ㈜한국야쿠르트 ‘사랑의손길펴기회’ 자원봉사자 김범준 씨와 문재근(29·경인지점 영업지원팀) 씨의 손을 놓지 못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이 여행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이들은 제주도 여행에 참가한 가족들의 관광을 돕고 아이들을 챙겼다. 정 씨의 아들 정성훈 군과 베트남 출신 응우옌티응옥꾸이 씨의 아들 손한풍 군은 여행 내내 이들의 곁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을 정도다.

지난해 3월 입사한 문 씨는 “여행을 떠나기 전 코시안의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말 한마디 못하고 숨어버린 아이들이 여행 기간에 마음을 열고 웃음을 찾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들은 “23일 한풍이 생일 때 성훈이와 함께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며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기보다 이들의 가족이자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