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은령]아이들의 도서관

  • 입력 2006년 6월 1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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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도서관인데, 배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다. 온돌이 깔린 도서관 마루에 아이와 엄마, 아빠가 나란히 앉아 그림동화책의 책장을 넘길 수도 있다. 별과 동물이 그려진 벽지로 도배된 작은 방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화구연도 들을 수 있다.

석박사학위 논문을 모아 두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국립중앙도서관 분원. 지상 4층 2400여 평 건물의 모습이 1년 만에 달라졌다. 유치원 건물처럼 외벽은 노란색이고, 안으로 들어서면 마룻바닥에 어린이 키 높이의 책꽂이가 보인다. 이곳이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으로 바뀌어 28일 개관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에 유난히 무게를 싣는 이유는 이 도서관이 조선총독부 치하에서 근대적 의미의 도서관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국립’ 수준의 도서관 서비스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국립중앙도서관은 한국 도서관의 얼굴이지만 18세 이하의 ‘어린’ 국민은 이용할 수 없다. 운용 목적이 개개의 이용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내외 자료 수집, 보존 등 국가대표 도서관 성격이라서 초등학생이나 중고교생이 구경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방학 기간 월 이틀씩 운영되는 견학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한국사회에서 어린이책, 어린이서점, 어린이도서관에 대한 열정은 들불처럼 번졌다. 그 열정의 원동력은 ‘지식사회 구축이 살길’이라고 외쳤던 정부에 있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혀야겠다고 생각한 엄마들이 나서서 동네 어린이서점부터 만들었고, 학교도서관이 집에서 안 보고 버릴 책을 모아놓는 창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뜻있는 교사들이 도서관을 아이들이 북적이는 공간으로 만들어 왔다. 지난 20년의 시민적 열망에 비추어 보자면 공공, 학교, 민간도서관에 운영 모델을 제시해야 할 ‘국립’ 수준의 어린이 청소년 도서관의 출범은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다.

이숙현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초대 관장은 15일 도서관 운영 청사진에 대해 “아직 연구단계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이 인포메이션 리터러시(information literacy)를 몸에 익히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도서관 모델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인포메이션 리터러시’란 복잡한 개념이 아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학교도서관이든 집 가까이에 있는 구립도서관이든 찾아가서 내게 답을 줄 책이나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다. 2015년이면 미국 의회도서관 소장도서를 메모리카드 하나에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인포메이션 테크놀로지가 발달한다지만, 인포메이션 리터러시를 갖추지 못한 사람은 그런 메모리카드를 손에 쥐여 줘도 스스로 앎을 확장해 나갈 수 없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포털사이트의 지식 검색서비스를 찾아 누군가가 요약해 놓은 자료를 읽어 버릇하며 자란 아이들과 도서관에 가서 동서고금의 책과 씨름하며 답을 찾아내는 수고를 익힌 아이들이 펼쳐 갈 미래의 깊이와 너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도서관이 어떻게 모바일 세대에게 흥미진진한 지적 놀이공간이 될 것인가. 뒤늦게 출범하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갈 길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은령 문화부 차장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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