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교육은 글로벌화 개방화 다양화 추세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공부 잘하는 학교를 죽이고 억제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한국외국어대부속외고(용인외고) 남봉철(61·사진) 교장은 2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2008학년도부터 다른 시도의 외고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데 대해 “학생의 학교 선택권을 빼앗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대원외고 교장을 지낸 남 교장은 지난해 3월 경기 용인외고가 문을 열면서 초대 교장으로 전격 영입됐다. 용인외고는 기숙사 생활에 영어로만 수업하는 등 최근 명문 외고로 부상해 전국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남 교장은 “전체 외고 운영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안을 교육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도 없이 터뜨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우리 학교에 관심있는 학부모의 문의 전화가 계속 오고 있다”고 말했다.
남 교장은 “외고는 과학고와 함께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설립됐다”며 “학교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숨통을 틔워 주고 만족감을 주는 것이 이런 학교인데 앞으론 이것마저도 어렵게 됐다”고 걱정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외고는 평준화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엘리트 학생을 길러냈고 이들이 현재 사회 각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며 “그런데도 이런 공을 도외시하고 마치 타도의 대상인 것 같은 정책을 내놓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남 교장은 “용인외고는 글로벌 인재 양성이란 건학이념을 갖고 전국 단위 선발로 개교한 지 1년 반밖에 안 됐다”며 “외고들 모두 전국 단위 학생 선발을 보장 받고 학교를 세웠는데 갑자기 정책을 바꾸는 것은 신뢰이익을 해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고가 입시 과목 위주로 편법 운영한다는 교육부 주장에 대해 그는 조목조목 근거를 대며 비판했다. 교육부가 특목고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 뒤 교육청이 철저히 감독하고 있어 과거처럼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외고는 교육부 방침대로 전공을 포함해 외국어 과목만 82단위를 가르치고 있고 이는 일반 학교의 4배 수준”이라며 “좋은 대학을 많이 간다는 결과만 놓고 학교 탓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 교장은 “교육부가 외고의 어문계열 진학률이 낮다며 설립 취지에 벗어난다고 하는데 외고의 전공은 중등 교양과정이지 통역사나 학자를 길러내는 과정이 아니다”라며 “언어는 이제 학문의 도구인 만큼 외국어 능력을 갖춘 우수 인재가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학부모-학생들“원하는 학교 찾아 이사가란 말이냐”▼
현재 중2 학생들이 고교에 입학하는 2008학년도부터 거주지 외의 다른 시도에 있는 외국어고에 지원할 수 없다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발표에 대해 해당 외고는 물론이고 학부모와 학생들까지 반발하고 있다.▶본보 20일자 A1·3면 참조
학부모 김모(41) 씨는 “한국외국어대부속외고(용인외고) 진학을 염두에 두고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강남으로 이사 왔는데 이 학교를 가려면 경기도로 이사 가야 하느냐”며 “정책은 최소 3년 전에 예고해야 하는데 이렇게 불쑥 내놓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다”고 흥분했다.
서울 명덕외고의 경우 위치상 경기 고양시 일산과 인천지역 학생이 많이 진학하고 있는데 앞으로 학생 모집이 어려울 것이란 걱정이 나오고 있다.
학부모 성모(39·경기 고양시) 씨는 “중1, 2학년생 학부모 사이에서 외고를 보내려면 전세를 놓고 서울로 이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 외고 준비생은 교육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외고는 학교마다 특성이 있어 학교를 골라 지원해야 하는데 이렇게 지역을 제한하면 어떻게 학교를 선택하느냐”는 글을 남겼다.
한 학부모는 특수목적고 진학 포털 사이트(www.studymania.com)에 “교육부 홈페이지에 항의 댓글을 달거나 서명 운동이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모(43·경기 성남시) 씨는 “용인외고에 서울 학생들이 대거 지원해 경기지역 학생의 입학이 상대적으로 적었는데 앞으로는 진학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일각에서도 공영형 혁신학교를 띄우기 위해 외고와 자립형사립고 억제 정책을 발표한 것에 대해 “어떻게 뒷감당을 하려는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광역 단위로 입학생을 모집한다는 결정은 변동 없이 추진될 것”이라며 “일부 학부모가 학교선택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광역자치단체 내에서 학교를 선택하면 된다”고 밝혔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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