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속행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교육부 간부들은 잇달아 방송에 출연해 정책을 홍보하고 산하 연구기관에도 언론에 해명기고를 내도록 독려하는 등 여론을 돌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① 외고는 실패한 정책?=김 부총리는 “전국에 외고가 31개(국제고 2개 포함)나 되고 특히 서울 경기 부산에 20개나 집중되는 등 지역적 불균형이 심하다”며 “외고는 첫 단추부터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했다.
외고는 평준화를 보완하기 위해 1984년 도입됐다. 우수 학생이 공부할 만한 특성화된 학교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외고라는 ‘길’을 터줬기 때문에 외고가 설립됐고 학생이 늘어나게 됐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교육부가 “외고는 실패한 정책”이라고 규정한 것은 직무유기를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② 입시교과 편법 운영=외고들은 옛날이야기를 아직도 들먹인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일부 그런 현상이 있었지만 교육부가 2004년 특목고 정상화 대책을 발표한 뒤 지금은 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르면 3년 동안 배우는 교과목 216단위 중 82단위를 외국어 과목으로 해야 하고 82단위의 50% 이상을 전공 외국어를 배우도록 하고 있다.
서울 대원외고 김일형 교감은 “교육청이 수시로 점검하기 때문에 편법은 생각도 못하는데 아직도 편법을 일삼는 것처럼 호도해 억울하다”고 말했다.
③ 동일계 진학 31%밖에 안 되나=김 부총리는 “외고 설립 목적은 어문학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인데 졸업생의 31%만 어문계열로 가고 이공계로 가는 학생이 12%”라며 “과학고는 75%가 이공계열로 진학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문계와 자연계의 진출 분야를 단순 비교하면 안 된다. 어문학은 인문학의 일부분인 데 비해 수학 과학 과목에 집중하는 과학고는 이과 특성상 대학 진학 때 선택할 수 있는 분야가 인문계에 비해 좁다.
④ 외고 지원 말라 겁주나=김 부총리는 “평준화지역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이 외고에선 3, 4등급을 받기도 힘들어 70% 이상의 학생이 극심한 내신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며 “2008학년도 대학입시부터 학교생활기록부 반영률이 50% 이상으로 높아지면 외고 학생이 절대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외고 학생을 둔 학부모들은 “외고 지원지역을 시도로 제한한다고 내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며 “언제는 내신 불리를 알고 입학했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더니 이젠 ‘외고 가지 말라’고 겁을 주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⑤ 전국이 외고 준비반?=외고와 자립형사립고 진학 붐이 일면서 학원에 외고반, 자사고반이 즐비하고 초등학생에까지 국제중 입학준비 열풍이 부는 것은 사실에 가깝다.
그러나 학교당 150명 정도의 극소수 학생을 뽑는 과학고 입학경쟁은 외고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치열하기 때문에 외고 준비 열기만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다.
또 대입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사교육 수요는 존재하는 것인데 외고를 사교육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교육위서 野-金부총리 공방▼
국회 교육위원회는 22일 김진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어 외국어고의 학생 모집지역 제한 등 교육부 방침을 놓고 논란을 벌였다.
야당 의원들은 특히 외국어고 학생 모집을 전국 단위에서 광역시도 단위로 제한하는 것은 학교 선택권을 빼앗고 학교 운영의 자율성, 지방교육자치를 훼손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교육부가 최근 외고가 어학특기자 양성이란 당초 목표 대신 입시교육에만 치중함으로써 ‘실패한 정책’이 됐다고 밝힌 데 대해 김 부총리의 딸을 예로 들며 “모순 된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이 의원은 “김 부총리의 딸도 D외고를 나와 Y대 경영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나. 글로벌 시대에 어학이란 모든 전공을 넘나들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도 좋은 거고, 그렇다면 김 부총리의 딸처럼 동일계로 진학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부총리는 “제 딸은 외고가 전국에 14개밖에 없던 시절에 다녔기 때문에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 당선된 기초자치단체장들의 공약만 종합해도 전국에 110개의 외고가 추가로 생겨난다. 현재도 많은데 앞으로 더 많아지면 외고 교육정상화도 문제이고, 대학입시에도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서울시내 6개 외고의 경우 국가지원금을 거의 받고 있지 않은 사립고인데 국가가 나서 선택권을 제한해도 되는 것이냐. 이는 평소 학교 선택권의 확대를 주장하던 김 부총리의 소신과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추궁했다. 그는 또 “학생 모집 권한은 시·도교육감 소관인데 이를 교육부가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부총리는 “외고가 수도권에만 너무 집중되는 등 지역편차가 심하다. (학교 선택권 제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교육부를 옹호했다.
최재성 의원은 “외고들이 설립 취지가 무색할 만큼 운영이 잘못 가고 있다. 이번 교육부의 조치는 우선 미세한 조정이라도 하겠다는 신호”라고 했다. 유기홍 의원은 “자립도가 높다고 하지만 외고 역시 시설비 등은 정부 지원을 받고 있다”며 정부 규제의 당위성을 거론했다.
조인직 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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