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2001년부터 의약품 전자상거래 시스템 구축과 운영을 담당해 온 삼성SDS에 360억 원을 물어주고 관련 시스템을 폐기처분키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에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5일 항소심에서 "복지부는 삼성SDS에 시스템 구축비 199억 원을 포함해 360억 원을 올해부터 2011년까지 매년 12월마다 60억 원씩 지불하라"고 강제 조정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무리한 정책으로 막대한 국민세금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직불제 폐지로 무용지물된 시스템=1998년 10월 복지부는 의약품 유통비리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의약품을 온라인으로 거래하는 '의약품유통종합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
복지부는 아울러 의약품 대금을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제약업체로 일괄 지급하는 '직불제'를 도입키로 했다. 대금 거래에 국가가 개입해 의사와 제약업체의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것. 이 규정은 1999년 2월 제정된 국민건강보험법에 포함됐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 삼성SDS는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고 1년 4개월 후 일부 시스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 12월 국민건강보험법이 개정되면서 직불제 규정이 사라졌다. 시스템을 통한 거래도 선택사항이 됐다. 당연히 이용자는 거의 없었다.
삼성SDS는 거래수수료 수입을 수익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건강보험법 개정으로 약속했던 '법적 지원'은 철회됐다. 삼성SDS는 매달 2억 원 정도의 운영비를 스스로 부담했다.
결국 삼성SDS는 2002년 6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2003년 7월 1심 재판부는 "복지부는 삼성SDS에 458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복지부는 항소했으나 5일 항소심 재판부가 조정결정을 내린 것이다.
▽왜 실패 했나=복지부의 안일한 대응과 의사 등 관련단체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복지부는 시스템 부실 운영 이유를 "의사 약사 등이 거래가격이 드러나는 것을 기피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한의사협회 병원협회 등은 직불제가 시행된 이후 줄곧 폐지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복지부는 의료계의 반발이 뻔한데도 치밀한 준비 없이 무작정 정책을 추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시 의약분업제도를 시행하면서 이 참에 직불제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삼성SDS와의 합의를 늦추면서 배상금이 불어났다. 최종 배상금의 액수는 1심 판결(458억 원)때보다 적은 액수다. 그러나 삼성SDS는 재판이전에 복지부에 시스템 인수 요청을 한 적이 있다. 이 때만 해도 인수비용은 300억 원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복지부는 "의약품 유통개혁이라는 목적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철저히 준비하지 못해 정책실패에 이르게 된 점을 인정한다"며 "당시 정책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등을 조사해 책임소재를 규명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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