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준우]말짱 도루묵

  • 입력 2006년 6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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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 및 식품의약품안전청 지방사무소는 24시간 신고센터 및 피해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한다. 식중독 피해자가 신고하면 언제라도 즉시 현장에 출동해 문제 식품을 수거해 바로 검사하고 환자도 동시에 검사함으로써 식중독의 원인을 즉각 밝혀낸다. 입증된 자료를 가지고 피해조정위원회에 신청하면 2, 3일 이내에 바로 피해 보상을 조정함으로써 소비자 개인이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소비자 권리 구제 시스템이 갖춰지면 사업자들이 철저하게 위생 관리를 함으로써 그 예방 효과가 엄청날 것이다.’

10년 만에 발생한 식중독 사고에 완벽하게 대응했다는 일본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2004년 6월 22일 국무총리실이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배포한 보도자료의 일부분이다.

현실은 완전히 딴판임이 CJ푸드시스템이 관련된 사상 최악의 식중독 사고를 통해 드러났다. 16일 서울 염광중고교에서 식중독 사고가 발생했지만 서울시교육청과 해당 보건소는 ‘즉시 현장에 출동’하지도 않았고 원인을 ‘즉각’ 밝혀내지도 못했다.

정부는 현재의 부실한 식품안전 정책이 지속되는 한 언젠가 대형 사고가 터질 수도 있음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정부는 2003년 8월 농림부 식약청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 공무원 및 전문가 8명으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 학교급식소 등 100여 곳을 찾아 식품안전 운영 실태를 점검하기도 했다. 이어 8개 부처가 21개 법률, 209개 하위 법령 등 식품안전법령을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바람에 식품안전관리 정책의 일관성이 없다고 보고 식품안전기본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이 같은 정책은 말짱 도루묵이 됐다. 위생점검을 한 공무원의 이름을 붙이는 위생점검 실명제, 자치단체별 위생점검 수준 발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식품위생법 정비, 제조업자의 유해식품 회수 의무화, 불량식품으로 인한 부당 이익 환수제 등 어느 것도 실행된 것이 없다. 실무자들이 애써 만든 대책은 결과적으로 휴지 조각이 됐다.

왜 이렇게 됐을까. 2004년 12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정부와 의원들은 식품안전기본법안 7가지를 제안했다. 법안마다 세부 사항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골격은 비슷하다. 무려 7가지가 되는 법안이 제대로 토의된 흔적마저 없으니 식품 정책은 정부와 국회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안전한 일상생활을 누리고 싶은 국민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는 생활 정치가 실종된 결과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 진상조사단을 구성한다느니 식품안전처를 연내에 발족한다느니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한명숙 국무총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책임을 물을 게 있으면 묻고 관리 시스템도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마치 2년 전의 보도자료를 다시 보는 듯하다.

정부와 정치권은 먼저 국민 앞에 반성문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법안이 어떻게 잠을 자게 됐는지 그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국민은 입에 발린 사과가 아니라 말짱 도루묵 식 정책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를 기대한다.

하준우 사회부 차장 ha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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