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돌리는 親盧 지식인 왜?

  • 입력 2006년 7월 4일 03시 12분


“이제 고향으로”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에 참가한 영화인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나라 걱정 그만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권 초기 우호적인 관계였던 영화계와 참여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금이 갔다. 김재명 기자
“이제 고향으로”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에 참가한 영화인들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나라 걱정 그만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시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정권 초기 우호적인 관계였던 영화계와 참여정부는 스크린쿼터 축소 시행을 계기로 결정적으로 금이 갔다. 김재명 기자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기반으로 꼽혀 왔던 진보적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의 이반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노무현 구하기’에 앞장섰던 진보성향의 지식인들은 그를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이론의 방패를 하나 둘 거둬들이고 있다. 문화계에서는 진보 성향의 예술단체마저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목소리 높여 비판하고 나섰다. 노 대통령의 든든한 우군으로 자타가 공인해 온 이들의 공세 수위는 단순한 지지철회를 넘어 ‘반정(反正)’의 기운까지 엿보일 정도다. ‘친노의 난’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 이런 현상의 실태와 원인을 추적해 본다.》

올 여름호까지 계간 ‘역사비평’의 편집주간을 지냈던 소장 역사학자 임대식 씨. 그는 여름호에 게재한 ‘편집주간 직을 떠나며’라는 글을 통해 노무현 정권에 통렬한 고별사를 띄웠다. “편집주간을 맡은 지난 5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에게 집착해 왔으나 이제 집착을 떨쳐버릴 시점이 된 것 같다”고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밝힌 것. 그는 “대연정, 전략적 유연성, 주한미군기지 확장이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문제로 개인적 집착에 이미 균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며 “이제 노무현 코드를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없게 된 참담함을 마지막 책머리 글에서 토로해야 하다니 착잡하다”고 밝혔다.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참여정부는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고 진단했다. 5·31지방선거가 치러지기 전 ‘교수신문’과 인터뷰한 조 교수는 “지금 참여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보지 않고 ‘포스트 참여정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고 말해 아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계간 ‘황해문화’의 편집주간인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3월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취임 직후 고군분투하던 노 대통령을 여러 지면을 통해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젠 ‘아니다’, 이런 생각이 확실히 든다”며 결별을 선언했다.

▽진보적 지식인들,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노 대통령을 지지해 왔던 범진보 성향의 지식인들이 대거 등을 돌리는 사태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양상은 과거와 사뭇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참여정부 출범 초기부터 범진보진영 내부에는 노 대통령을 비판해 온 지식인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주로 1980년대 운동권의 사상적 계파 분류에서 민중민주(PD)계열로 분류되는 그룹이었다. 최근 지식인의 이반 현상은 노 대통령의 지지기반이었던 민족해방(NL)계열과 중도개혁파에서 뚜렷하다는 점 때문에 예사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

최근 노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보면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철회는 몇 단계를 거쳐 이뤄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진보적 지식인의 이반은 2003년 하반기 이라크 파병 결정까지만 해도 약간의 동요에 그쳤으나 2005년 대연정 발언과 비정규직 법안 처리,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한미 FTA 추진이 결정타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대연정을 추진하겠다는 깜짝 발언은 개혁수행 과정에서 확인된 무능을 보수로의 투항으로 풀려고 한다는 반발을 낳았고 비정규직 법안은 진보진영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자·민중의 아픔을 외면하고 보수적 신자유주의 논리에 굴복한 것이라는 불만을 낳았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은 노 대통령이 초기에 보여준 미국에 대한 비타협적 자세를 포기하고 결국 친미적 패러다임에 투항한 것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의 추진은 진보진영에 ‘노 정권 변절의 종합세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안, 사패산, 천성산, 새만금 사업 등 굵직한 환경 문제에서 번번이 보전론보다 개발론의 손을 들어준 것도 전통적 진보 지지층 이탈을 부른 원인(遠因)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 대통령 취임 초기만 해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시정잡배들의 잡소리’라며 막아내던 도올 김용옥 씨가 올 3월 노 대통령을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이라고 막말로 비판하고 나선 것도 현 정부의 환경정책에 대한 불만이 빚어낸 소극(笑劇)이었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적 지식인들은 ‘좌파적 신자유주의’라는 노 대통령의 현 정부 노선 규정에서 ‘좌파’보다는 ‘신자유주의’에 무게가 더 쏠렸다는 최종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을 하고 있다”거나 “얼치기 좌파의 형용모순”이라는 비판은 바로 이러한 노 대통령의 ‘정체성 상실’을 겨냥한 것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을 지우는 방법들=노 대통령에 대한 이런 지지 변화에 따라 진보적 지식인 집단은 △비판적 차별화 집단 △지지철회 집단 △사안별 비판 집단 △침묵(?)하는 집단으로 나뉘고 있다.

비판적 차별화 집단은 손호철 서강대 교수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등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온 PD계열 지식인들이다. 지지철회 집단으로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강준만 전북대 교수, 조희연 교수 등이 꼽힌다.

사안별 비판집단으로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지지하지만 한미 FTA 추진은 비판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계간 창작과비평(창비) 계열 지식인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참여정부의 환경·노동정책에 줄기차게 불만을 표시해 온 환경·노동운동 그룹의 상당수가 지지 철회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침묵하는 집단은 주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부 각료와 각종 위원회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이다. 이 중 노 대통령의 한미 FTA 추진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정태인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은 사실상 지지철회집단으로 이동한 셈이다.

한편 참여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했던 임혁백 고려대 교수, 김형기 경북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은 직접적 비판은 피하면서도 새로운 진보를 표방하는 ‘좋은정책포럼’을 통해 현 정부와 차별화된 정책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우회적 비판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말만 앞세우고…” 문화예술계도 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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