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유명한 철학자들도 체벌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7∼기원전 347)은 “체벌은 능력이 있는 자를 일깨운다. 그래서 똑똑한 아이에겐 필요하지만 못난 아이에게는 필요 없다. 체벌은 나쁜 습관적 행동을 교정하고 제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체벌 찬성론을 폈다.
하지만 제정 로마시대의 교육철학자 마르쿠스 퀸틸리아누스(35?∼95?)는 “체벌을 하면 학생은 처음에는 알아듣지만 점점 반감을 갖게 되고 체벌에 무감각해져 나중에는 효과가 없다. 체벌은 공포감 불안감 열등감을 조성하고 그 공포가 다른 사람에게도 미친다”고 역설했다.
체벌에 대한 절충론도 있다. 영국의 근대 사상가 존 로크(1632∼1704)는 “뜻을 새김질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선택적으로 체벌을 가하고 한편으론 애무를, 다른 한편으론 채찍질을 하는 사랑과 미움의 행위가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체벌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영미(英美)권은 체벌을 인정하는 편이며 유럽 대륙권은 체벌을 금지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은 주에 따라 체벌을 허용하기도 하고 금지하기도 한다. 캐나다 뉴질랜드 등은 제한적으로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프랑스 등은 이미 1800년대에 법으로 체벌을 금지했다. 이들 국가에서도 교사가 학생의 귀를 잡아당기는 정도의 가벼운 체벌은 이뤄지고 있다. 아랍권은 마호메트의 언행을 적은 ‘하디스’에 근거해 12세 이하 어린이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은 체벌에 대해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나라다. 어느 법도 체벌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교사에게 맞았다는 학생이 한두 명이 아니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학교의 장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않은 훈육 훈계 등을 통해 지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육상 불가피하면 체벌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교육 당국은 실제 그렇게 해 왔다. 대법원 판례도 부득이한 상황에서 상식적 수준의 체벌을 용인하고 있다.
무엇이 부득이하고 무엇이 상식적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모호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학생과 시대가 변하면 이 기준도 바뀔 수밖에 없다. 최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교사의 체벌은 ‘시대 따라잡기’에 실패한 교육계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교사와 학생의 절반 이상이 체벌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자식에게 손을 대는 부모가 많은 풍토에선 법이 뭐라고 하건 체벌은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체벌은 문화의 소산이어서 법이 이를 해결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버리는 게 낫다. 교육계는 누구나 고개를 반쯤은 끄덕일 수 있는 체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고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한다.
하준우 교육생활부장 hawo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