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곳곳엔 흙탕물이 넘쳐흘러 인도와 차도를 분간하기 힘들었고 양평2동 저지대 주택가는 어른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주차된 차량들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8시가 넘어서 무너진 제방을 일단 막는 조치를 완료했다. 그러나 현장 관계자는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양평2동과 닿아 있는 안양천 제방에 균열이 생긴 것은 이날 오전 5시 48분경. 조금씩 제방 틈을 비집고 들어온 물은 너비 5m가량의 제방을 붕괴시켰고 낮 12시를 넘기면서 안양천 위를 지나는 양평교 입구까지 흘러넘쳤다.
길가에 나와 있던 주민들은 당국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피해가 커진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날 아침 제방 균열을 발견한 현장 관계자들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다 2시간을 허비했고 경찰과 소방관은 사고 발생 후 5시간이나 지난 오전 11시에야 나타났다.
이 사이 영등포에서 목동 방면으로 가는 길은 물길에 완전히 차단됐고 안양천변 동양아파트와 한신아파트 입구도 물에 잠겼다.
양평2동 일대가 물바다가 된 것은 무너진 제방에서 10m가량 떨어진 지하철 9호선 907공구 공사장으로 안양천 물이 급속히 빨려 들어가 역류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제방의 무너진 부분 역시 지하철 공사를 위해 헐었다 막아놓았던 곳으로 알려져 인재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영등포구청 직원들은 양평교 위에서 대형 트럭으로 수십 t의 자갈과 컨테이너 등을 쏟아 부으며 뚫린 제방을 막으려 했지만 물살이 워낙 거세 자갈마저 쓸려 내려갔다.
현장에 있던 주민 이길임(58) 씨는 “오전 11시경 무너진 제방을 다 막아 간다고 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무섭게 물이 차다가는 반지하 집이 다 잠기게 생겼다”며 안타까워했다.
오후 들어 이 일대에 가스 공급이 차단되자 편의점마다 부탄가스와 빵 등 생필품을 사려는 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사고 현장과 가까운 양천구 신정동과 목동에서도 주민들이 생수와 라면 등을 사재기해 상품 진열대가 텅 비기도 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2만여 명이 살고 있는 양평2동 3∼6가에서 침수지역의 1200가구 5000여 명에게 대피령을 내렸다”고 밝혔다.
대피소가 마련된 당산초등학교엔 몸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을 태운 119구급차가 속속 도착했고 강당에 모인 주민은 과자와 음료로 점심 식사를 때웠다. 저녁이 되면서 이재민이 계속 늘어 오후 9시경엔 650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
TV도 없는 강당에서 이재민들은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수신 휴대전화를 가진 주민 곁으로 삼삼오오 모여 수해 상황을 지켜봤다.
유영해(37·여) 씨는 “오늘 저녁 당장 아이에게 먹일 우유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내일도 비가 오면 완전히 고립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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