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머스트, 윌리엄스, 웨슬리안, 보우든 등 미국 동북부에 있는 11개의 리버럴아츠(문리)대학들은 훌륭한 학부 중심 교육으로 ‘리틀 아이비리그’로 불린다. 모두 기업인이나 종교재단의 기부로 세워진 사학(私學)으로 실용 학문보다는 인문 자연과학 분야의 소양 교육에 역점을 두는 곳이다. 이들 학교에 들어가기는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도 결코 쉽지 않다.
이들 대학의 동문 면면을 보면 학교가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의사 출신으로 의학 스릴러 문학을 개척한 로빈 쿡은 웨슬리안대에서 의사 이전에 작가로서의 기초수업을 받았다. 대통령 부인을 넘어 최초의 미국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힐러리 클린턴은 여자 대학인 웰즐리대에서 진취적 기상과 당당한 태도를 배웠다.
반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대학 중에서 ‘작지만 강한 대학’ 시리즈에 소개하기에 적합한 대학을 찾기는 어려웠다. 유럽 대학은 예외 없이 국립대이고 규모가 크다. 공부할 생각이 있고 자격시험만 통과하면 누구든 대학에 갈 수 있다. 학비는 무료다. 학생에겐 지상낙원 같은 ‘경쟁 없는 시스템’은 학교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프랑스의 파리10대학 낭테르 캠퍼스는 학생이 주도하고 노동자가 가세한 1968년 68혁명의 진원지였다. 두 달 전 뉴욕타임스는 이 캠퍼스에 관해 이런 기사를 실었다. ‘도서관은 휴일엔 문을 닫고, 평일에도 10시간만 연다. 도서관 컴퓨터 중 인터넷에 접속되는 것은 30대 정도에 불과하다. 시험기간에만 학교에 나오는 학생이 많고, 연구실이 없어 떠도는 유랑(流浪) 교수도 많다.’
프랑스는 68혁명 이후 늘어나는 대학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단과대를 폐지하고 전체 고등교육을 통합한다는 취지로 대학을 개편했다. 그 결과, 중세 시대부터 빛나는 전통을 이어온 대학들이 교수와 학생의 대등한 관계를 창출한 대신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경쟁력은커녕 이름까지 잃어버려 ‘파리1대학’ ‘파리2대학’으로 불릴 정도다. 이곳의 학생들은 극렬한 데모로 정부가 고용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하려던 최초고용계약법을 무산시켰다. 프랑스는 대학 ‘공교육’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대학 위의 대학’이라는 그랑제콜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대학을 개혁하자는 목소리는 대학 경쟁력이 세계 최고라는 미국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이달 미 대학교육위원회는 ‘대학 교육비용이 지나치게 높고 졸업생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지 못한 채 직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며 대대적인 개혁을 촉구했다.
우리 대학들도 구조 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정부가 개입해 돈만 퍼붓고 고등실업자를 양산할 것인가, 대학 스스로 특성화된 교육을 통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 낼 것인가. 프랑스와 미국 대학의 대조적인 모습 속에 답이 보인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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