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의류업체의 한국 지사장인 B 씨는 딸을 본국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내기로 했다. 그는 “학교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이 내 주변에만 세 집이나 된다”고 전했다.
한국의 외국인 교육환경에 대한 외국인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본보가 최근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 가운데 자녀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외국인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74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또는 인터뷰를 한 결과 응답자의 65%가 한국 내 외국인 교육 환경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28%는 교육 환경 때문에 한국에서의 투자를 재고(再考)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는 미국인 26명, 영국인 13명, 독일인 12명 등 18개국 출신이다. 이들 대부분은 본사의 한국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자리에 있다.
○“이런 교육환경이라면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
외국계 기업 임원의 상당수는 자녀 교육 때문에 스스로 전출을 희망하고 있거나, 한국 근무를 거부하는 직원 때문에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실제로 최근 유럽 캐나다 등 12개 주한외국상공회의소 대표들은 재정경제부 등 7개 정부 기관장을 상대로 “자녀를 교육시킬 학교를 찾지 못해 한국 파견 근무를 꺼리면서 주요 투자 프로젝트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국적기업 한국 법인의 한 CEO는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외국 기업인이 있다면 우선 한국의 교육 현실 이야기부터 해줄 것”이라며 “긍정적인 이야기는 못 할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외국인 학교에 한국 아이가 너무 많다” 불만
외국인학교에 대한 내국인 입학 기준을 완화하려는 한국 정부 계획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한 미국 기업 임원은 “외국인학교의 설립 목적은 외국인 투자 유치”라며 “외국 생활을 오래 한 한국인들을 위한 학교라면 별도로 짓는 것이 낫다”고 꼬집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는 지난해 “외국인학교에 한국인이 너무 많아 교실 밖에서 사용하는 주 언어가 한국어”라면서 “국제학교가 아니라 한국 학생을 위한 영어학원인 셈”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서울의 한 국제학교 관계자는 “한국인 학부모들과 외국인 학부모들의 마찰도 종종 벌어진다”고 전했다.
국제 인력 개발 회사인 콘페리 인터내셔널의 조너선 홈스 한국지사장은 “한국이 아시아 경쟁 도시에 비해 외국인 교육 환경이 뒤처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이 아시아 경제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인 교육 인프라의 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교육을 받을 기회도 적어
외국인들은 그나마 있는 외국인학교가 대부분 미국식 학제를 채택해 자녀 교육 선택권이 크게 제한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유럽 및 기타 지역 주요 대학에 입학하려면 국제학사학위(IB)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설문조사 결과 IB를 선호하는 응답자는 53%에 달했지만 한국에는 IB 과정이 있는 학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중남미와 유럽, 동남아시아 등에서 국제학교 운영 경험이 있는 줄리아 버크스 서울 국제어린이조기학교(ECLC) 교장은 “잠깐 살다 가는 외국인들에게 교육의 연속성이 중요하다”며 “다양한 학제의 학교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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