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머리를 크게 다쳐 제대한 뒤 언어장애와 청각장애를 겪으며 살아온 김모(74) 할아버지.
그는 1953년 5월 육군에 입대한 뒤 두 달 만에 경기 포천지구 전투에서 유탄 폭발에 따른 두개골 함몰골절 등의 부상으로 1955년 1월 육군수도병원에서 명예제대했다.
김 씨는 전역 후 언어장애와 청각장애 등의 후유증으로 매일 심한 두통과 메스꺼움에 시달려야 했다. 후유증 탓에 직장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내가 구청에서 간혹 마련해 주는 공공근로에 참여해 받아 오는 돈이 생활비의 전부.
청각장애를 가진 김 씨의 부인도 나이가 들면서 자주 몸져누워 생계는 더욱 어려워졌다.
김 씨는 2002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으면 보훈병원에서 돈 걱정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유독 심해진 두통 때문에 찾은 병원의 의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그는 곧바로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했지만 군병원에서 치료받았던 병상일지가 남아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신청이 거부됐다.
그는 주위의 도움을 얻어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무료 소송구조를 신청했다. 법률구조공단은 서울중앙지부 소속 김현아(사법시험 43회)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겼고 김 변호사는 김 씨를 대리해 인천보훈지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은 패소했다. 사라진 병상일지가 역시 문제였다.
항소심은 맡지 않으려고 했던 김 변호사는 마음을 돌렸다.
“제가 안 맡으면 할아버지(김 씨)께서 그동안 제게 해 온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또다시 설명하셔야 할 것 같았어요. 할아버지는 말씀을 못 하셔서 소송과 관련된 이야기를 몇 달 동안 모두 편지로 써서 주셨거든요.”
지난달 28일 서울고법 특별10부(부장판사 김경종)는 1심을 뒤집어 김 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라진 병상일지는 다른 사람의 것과 바뀌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전투 중에 부상한 사람만이 명예제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고려됐다.
사건이 대법원으로 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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