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과 양심의 보루’ 무너진 法恥日

  • 입력 2006년 8월 9일 03시 04분


차관급 예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후배 법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영장실질심사에서 주요 혐의 사실에 대해 “허구”라고 부인했고 변호인은 “일부 받은 돈은 의례적인 수준의 사교적 성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관이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사교’가 될 수는 없다. ‘법과 양심의 보루’여야 할 사법부의 한 모퉁이가 비리의 사슬로 얽혀 있음이 드러난 치욕의 날이다.

몇 해 전에도 변호사를 고리로 한 법조비리 사건이 터져 사법부에 태풍을 몰고 왔다. 그러나 태풍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그뿐이었다. 사법부는 외부의 사법개혁 논의에 대해 ‘사법권 독립 침해’라고 내세우면서 정작 내부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 주지 않았다. 사법부가 잘못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나 야당이 주장하는 상설 특검을 만들어 법조비리를 뿌리 뽑자는 논의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법조 브로커 사건에 관련된 법관 검사 총경 한 명씩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해 외형적 균형 맞추기를 한 인상을 준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K 씨도 현직 판사 신분으로 돈을 받은 혐의가 있어 검찰이 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비리 법관이 조 전 부장판사와 K 연구관 뿐일까. 검찰과 사법부는 이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법조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법관이 외부의 부당한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해 공정한 재판을 하려면 판사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까지도 윤리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검찰이 청구한 조 전 부장판사 부인의 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법관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법치일(法恥日)이다. 사법부는 이 사건을 ‘고기 한 마리가 물을 흐렸을 뿐’이라고 넘기지 말고 치열한 자정(自淨) 노력을 해야 한다. 사법부가 투명하다는 믿음을 주어야만 유전무죄(有錢無罪)의 사법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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