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관행 前고법부장 폭로성 발언에 검찰 “그만하라” 제지

  • 입력 2006년 8월 9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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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로 가는 前검사와 前서장 9일 오전 김영광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왼쪽)와 민오기 전 서울서대문경찰서장이 수감 장소인 서울 성동구치소로 떠나기 위해 수사관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오고 있다. 이훈구  기자
구치소로 가는 前검사와 前서장 9일 오전 김영광 전 서울중앙지검 검사(왼쪽)와 민오기 전 서울서대문경찰서장이 수감 장소인 서울 성동구치소로 떠나기 위해 수사관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오고 있다. 이훈구 기자
수입카펫 판매업자 김홍수(58·수감 중) 씨에게서 사건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조관행(50·사법시험 22회)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8일 ‘폭로’ 가능성을 내비쳐 파문이 일고 있다.

앞으로의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을 때에는 다른 동료나 후배 판사들의 연루사실을 모두 밝히겠다고 법원을 향해 감정이 섞인 경고성 발언을 한 것.

조 전 부장판사와 전직 검사, 경찰 총경 각 1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는 듯하던 검찰 수사는 상황에 따라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도 있다.

▽“여럿 다칠 수 있다”=조 전 부장판사는 이날 후배인 영장담당 판사 앞에서 “나의 억울함이 풀리지 않으면 여러 판사가 다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왜 자신이 오랫동안 몸담은 법원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런 발언까지 하게 됐을까. 그동안의 검찰 수사과정이나 이날 영장심사에서 보인 조 전 부장판사의 행적에서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조 전 부장판사는 검찰 수사 이후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최근까지도 대법원의 사표 제출 요구를 거부했다.

지난달 초에는 자신에 대한 계좌추적 영장이 법원에 제출되자 수사팀을 찾아가 항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이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혐의가 벗겨지지 않자 한때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급기야 자신의 소개로 김 씨와 만나 술자리를 같이했거나 전별금 등을 받은 동료, 후배 판사들의 이름을 대며 모두 확인해 줄 것을 검찰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에게서 “술자리에서 사건과 관련된 얘기는 없었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까지 받아 제출하기도 했다는 게 법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조 전 부장판사는 김 씨에게서 받은 돈이나 선물 등이 16년간 친교를 맺어 온 친구에게서 대가성 없이 받은 것이라고 인식하는 듯하다. 향응도 법조계의 오랜 관행인데 유독 자신만 문제 삼는 데 대한 불만과 억울함을 표출했다는 것.

이런 인식과 심리 상태는 이날 열린 영장심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조 전 부장판사는 “한때 기소가 되면 자살한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법정으로 들어가기 전 취재진에게 “검찰의 혐의 사실은 하나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할 때는 두 손을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파장 커지나=검찰이 수사 중인 판사들은 조 전 부장판사를 포함해 4명. 모두 조 전 부장판사를 통해 김 씨와 알게 돼 김 씨에게서 금품이나 향응을 받은 정황이 포착된 경우다.

조 전 부장판사의 태도에 따라 이들 외에 상당수의 현직 판사가 모두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검찰은 그동안의 조사를 통해 이들에 대해선 김 씨를 제외한 제3자의 증언이나 다른 증거가 없어 수사선상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조 전 부장판사가 적극적으로 ‘진술’하고 나설 경우 검찰로서도 이들에 대한 조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도 최악의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조관행 前고법부장은

9일 새벽 구속된 조관행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5년의 법관 생활 동안 별다른 부침 없이 일반적인 법관의 코스를 밟아 온 엘리트 판사로 알려져 있다.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1982년 서울민사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재판과 관련한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94년부터 3년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고, 1999년부터 2년간은 사법연수원 교수로 근무했다. 2002년에는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에 위촉됐다.

빈틈없는 경력과 달리 평판은 엇갈렸다. 선배 판사들은 “능력이 출중하고, 특히 선배들의 경조사를 빠짐없이 챙기는 믿음직한 후배”라는 평. 그러나 후배 판사들 사이에선 “후배들이 맡은 사건에 간섭이 지나친 선배”라는 소문이 잦았다.

조 전 부장판사는 2004년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법관 경력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당시 ‘담배 소송’을 맡은 그는 소송을 낸 환자들에 대한 신체감정서가 재판부에 제출되자 기자들에게 ‘보도의 편의를 위한다’는 취지로 요약본을 만들어 제공했다.

그러나 환자들의 변호사가 “요약본이 환자 측에 불리하게 왜곡됐다”는 주장을 제기해 논란이 불거졌고, 조 부장판사는 결국 이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넘겨야 했다.

당시 그는 고법 부장판사 승진 대상자였기 때문에 이 사건으로 승진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그래서 그가 지난해 2월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해 대전고법 수석부장판사로 부임한 것은 법조계에서 ‘뉴스’였다.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엘리트 판사로 이름이 높던 사람이 피의자가 된 현실은 법원 전체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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