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기관이 도청으로 수집된 불법 자료를 보도한 행위가 위법한 것인지에 대한 첫 판결이다. 법원은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상 두 기본권 사이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언론의 자유’가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보도 내용이 공익에 관한 것이고 보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이익 사이의 균형 등을 헌법의 취지에 비춰 볼 때 위법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에는 위법성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지만 언론의 기능상 보도를 위해 통신의 비밀을 불가피하게 침해할 경우 형법상 정당행위 조항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보도 내용 가운데 국내 대기업 간부 등 대화 당사자들이 대선 정국과 관련해 불법 정치자금 전달 방안을 논의한 부분은 선거라는 민주적 기본 질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대화 당사자들이 국민의 정치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인격권 침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편집장에 대해서는 녹취록 전문을 보도하는 등 위법성이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지만 이미 녹취록 내용이 다른 언론에 보도돼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헌법상 보장된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라는 두 기본권이 상충하는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통신의 비밀도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법률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상대적 기본권”이라고 판단했다. 공익적 목적의 언론보도 등 예외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통비법은 제한이 불가능한 기본권이 되어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법리’에 모순된다는 것.
이를 위해 재판부는 형법과 언론중재법을 원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불가피한 행위였다’는 형법상 정당행위 조항과 언론중재법의 ‘인격권 침해가 공적인 관심사에 대해 중대한 공익적 필요에 의해 부득이하게 이뤄진 때 위법성이 깨진다’는 규정을 원용했다.
한편 MBC 기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을 내린 사법부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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