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파일’ 이상호기자 무죄선고

  • 입력 2006년 8월 12일 03시 01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득환)는 11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감청 자료인 ‘안기부 X파일’ 내용을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된 MBC 이상호(사진) 기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월간조선 김연광 편집장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해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지만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언론기관이 도청으로 수집된 불법 자료를 보도한 행위가 위법한 것인지에 대한 첫 판결이다. 법원은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상 두 기본권 사이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언론의 자유’가 우선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보도 내용이 공익에 관한 것이고 보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이익 사이의 균형 등을 헌법의 취지에 비춰 볼 때 위법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에는 위법성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 아무런 규정이 없지만 언론의 기능상 보도를 위해 통신의 비밀을 불가피하게 침해할 경우 형법상 정당행위 조항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보도 내용 가운데 국내 대기업 간부 등 대화 당사자들이 대선 정국과 관련해 불법 정치자금 전달 방안을 논의한 부분은 선거라는 민주적 기본 질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며 “대화 당사자들이 국민의 정치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인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인격권 침해는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편집장에 대해서는 녹취록 전문을 보도하는 등 위법성이 인정돼 징역 6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지만 이미 녹취록 내용이 다른 언론에 보도돼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헌법상 보장된 ‘통신의 비밀’과 ‘언론의 자유’라는 두 기본권이 상충하는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통신의 비밀도 다른 기본권과 마찬가지로 법률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상대적 기본권”이라고 판단했다. 공익적 목적의 언론보도 등 예외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통비법은 제한이 불가능한 기본권이 되어 헌법상 ‘기본권 제한의 법리’에 모순된다는 것.

이를 위해 재판부는 형법과 언론중재법을 원용하는 유연성을 보였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불가피한 행위였다’는 형법상 정당행위 조항과 언론중재법의 ‘인격권 침해가 공적인 관심사에 대해 중대한 공익적 필요에 의해 부득이하게 이뤄진 때 위법성이 깨진다’는 규정을 원용했다.

한편 MBC 기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릴 수 있는 현명한 판단을 내린 사법부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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