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토리라인
낮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지만, 밤이면 ‘네오’라는 이름을 가진 해커로 변신하는 남자 앤더슨(키아누 리브스). 그는 어느 날 모피어스란 인물을 만나면서 자신이 미처 몰랐던 엄청난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들이 알고 보니 진짜 현실이 아닌,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배하는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컴퓨터의 에너지원으로 쓰이고 있었으며, 대신 컴퓨터는 인간의 두뇌를 조작함으로써 매트릭스라는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 속에서 자신들이 달콤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네오가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인류를 해방시킬 구원자라고 믿는 모피어스. 그의 도움으로 네오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각종 무술을 삽시간에 익힌 뒤 엄청난 능력을 가진 전사로 다시 태어납니다. 매트릭스의 세계로 뛰어든 네오는 매트릭스에 반대하는 인간들을 색출해 제거하는 임무를 가진 스미스 요원과 건곤일척의 대결을 벌입니다.
[2] 주제 및 키워드
영화의 주제는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네는 다음 대사 속에 숨어 있습니다. “진짜 현실 같은 꿈을 꿔 본 적이 있나? 그 꿈에서 깨어난다면,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지?”
멋진 질문이죠.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 속에 파묻혀 영원히 달콤한 꿈을 꾸고 있다면, 그게 ‘진짜 현실’인지 ‘가짜 현실’인지를 스스로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지금 여러분도 어쩌면 실제론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분이 꾸고 있는 꿈속의 주인공일지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결국 영화의 주제는 ‘컴퓨터가 지배하는 가상세계에서 인간이 갖는 정체성의 문제’라고 진단할 수 있겠죠.
마침 이런 주제의식과 딱 맞아떨어지는 동양의 철학적 사고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입니다. 어느 날 장자는 자신이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깨어나 보니 ‘나는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래 나비인데 지금 사람이 되는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알쏭달쏭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 ‘호접지몽’이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영화가 던지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와 만나게 됩니다. 이 메시지는 가상세계를 박차고 나온 네오가 ‘진짜 현실’의 문을 열었을 때 모피어스가 던진 인사말과 밀접한 연관이 있죠.
“진실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하네(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
우리는 ‘진실(the real)’이 달콤하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진실은 꿈보다 훨씬 더 쓰고 괴로운지 모릅니다. 기계가 보장하는 달콤한 꿈의 세계를 뿌리치고 네오가 얻은 자유의 대가는 오히려 황량하고 비루한 현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더 실망스럽고 더 험한 현실일지라도, ‘진짜 현실’을 선택해야만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디지털 시대 인간의 정체성’과 함께 이 영화가 쌍둥이처럼 품고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진정한 자유를 향한 인간의 선택과 의지’, 즉 인간의 ‘자유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생각 넓히기
영화의 초반에 쓱 지나가 버리지만 알고 보면 아주 중요한 장면이 있습니다. 네오의 아파트에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고자 하는 구매자들이 찾아옵니다. 네오는 소프트웨어들 사이에 숨겨두었던 두꺼운 책 한 권을 펼칩니다. 바로 이 순간, 네오가 손에 든 책의 표지를 살펴보십시오.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보드리야르의 유명한 저서 ‘시뮐라크르(Simulacre) & 시뮐라시옹(Simulation)’입니다.
‘시뮐라크르’란 뭔가요? ‘원본보다 더 실제 같은 복제’를 뜻합니다. 그럼 ‘시뮐라시옹’은 뭘 말하나요? ‘이런 시뮐라크르를 통해 이뤄진 하나의 세계’입니다. 결국 보드리야르가 주장한 ‘시뮐라시옹’ 이론은 ‘복제된 가상의 이미지들에 의해서 현실이 대체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전쟁을 단 한번도 경험하지 않고도 TV를 통해 전달되는 이라크전쟁의 이미지를 보고 전쟁의 ‘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바로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라는 용어가 도출됩니다. 우리말로는 ‘과도현실(過度現實)’ 혹은 ‘극 실재’라고 하죠. 매스컴이 쏟아내는 더 자극적이고 과도한 이미지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동안에 정작 ‘진짜 현실’이 뭔지는 알 수 없게 되는 현상 말이죠.
[4] 뒤집어 생각하기
영화 속 네오를 살펴볼까요? 네오는 자신이 매트릭스의 세계에 갇혀 있는 인류를 구할 구원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 채 스미스 요원의 총에 맞아 죽지만, 부활해 인류의 메시아임을 증명하죠.
바로 이런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고스란히 포개어집니다. 예언자 오라클의 예언에 따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로 태어나고, 또 시련 속에서 부활해 인류의 구세주가 되는 존재, 즉 네오는 예수의 알레고리(비유)였던 것이죠.
네오가 인류의 구원자가 되리라는 사실은 이미 그 이름 속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모피어스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구원자이자 절대 존재는 ‘그’, 영어로는 ‘The one’으로 표현되는데요. ‘one’이란 단어에서 첫 번째 철자인 오(o)를 떼어다가 맨 끝에 붙여보세요. 어떤 단어가 되나요? 그렇죠. 엔(n) 이(e) 오(o), 즉 주인공 이름인 ‘네오(Neo)’가 됩니다. 결국 ‘네오’라는 이름에는 ‘새로운’이라는 단어 자체의 뜻 말고도, 그가 인류의 미래를 살릴 구원자가 되리라는 복선이 깔려있었던 것이죠.
여러분, 트리니티는 네오의 귓가에 이렇게 속삭입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건 바로 질문이야(It's the question that drives us).”
맞습니다. 우리를 움직이는 건 바로 ‘질문’입니다. 아무리 달콤한 현실일지라도, 현실에 결코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질 때 새로운 세상은 열리니까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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