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종로3가에 있는 한 성인오락실. 30대로 보이는 남성이 들어와 2만 원을 건네며 게임기 두 대를 지목했다.
한낮인데도 이곳은 40여 명의 손님으로 북새통이었다. 오락실 안은 어두침침했지만 60여 대의 ‘바다이야기’ 게임기가 연방 뿜어내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마치 무도회장 같았다.
이 남성은 게임기 앞에 팔짱을 끼고 앉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그림을 유심히 지켜봤다. 또 다른 한 대의 게임기 시작버튼에는 라이터를 올려둔 채 간간이 점수를 확인했다.
시작버튼에 라이터를 올려둔 것은 손으로 버튼을 누르는 수고를 덜기 위해서다.
2만 원어치의 게임은 6, 7분 만에 끝났다. 그는 또다시 지갑을 열어 1만 원짜리 2장을 게임기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1시간이 흐르자 그의 표정은 점점 초조해져 갔다.
그는 “조금 전 대박이 터질 거라는 예고 화면이 떴다”며 “지난번엔 200만 원 가까이 터져 제대로 한몫 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3시간 가까이 게임에 매달렸지만 60여만 원만 날린 채 발길을 돌렸다.
자동차 영업사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3개월 전부터 바다이야기에 빠져들어 지금까지 500만∼600만 원은 족히 날렸을 것”이라며 “영업실적도 엉망이 돼 게임을 끊고 싶지만 눈만 감으면 게임 모니터가 아른거려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가 성인게임시장을 평정한 것은 1년여 전. 성인오락실의 70% 이상을 바다이야기가 장악했다.
사실상 빠찡꼬와 다를 바 없는 이 게임이 동네 구석구석 퍼지면서 전국의 주택가 뒷골목까지 도박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
상금으로 기계에서 현금이 아닌 5000원짜리 경품용 상품권을 받는데 상품권은 게임장 주변 환전소에서 현금 4500원으로 즉시 교환이 가능해 실제 빠찡꼬와 다를 게 없다.
바다이야기의 성공비결은 무엇보다 높은 사행성에 있다.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에선 이 게임이 ‘게임당 4초 이상, 경품 한도 2만 원 이상, 시간당 이용금액 9만 원 이상’ 등의 사행성 기준에 저촉되지 않아 등급분류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게임은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운영체제(OS)로 만들어져 개조 및 변조가 매우 쉽다. 실제 성인오락실에 들어와 있는 게임기 가운데 영등위에 신고한대로 운영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조 및 변조된 게임기는 최대 한 번에 300만 원까지 딸 수 있는 ‘연타기능’이 추가된다. 다시 말해 잃을 땐 적은 금액을 꾸준히 잃지만 딸 땐 한 번에 크게 따도록 만든 것이다. 한순간의 ‘대박’을 꿈꾸는 서민들이 바다이야기에 중독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지막 한 푼까지 뜯어내는 중독성 게임=대박 예고 기능은 중독성을 더욱 가중시킨다. 게임을 하다 보면 갑자기 게임기의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번개가 치고 고래가 나타난다. 곧 대박이 터질 수 있다는 뜻.
하지만 이 화면이 나타난다고 반드시 대박이 터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게임을 그만두려던 고객은 이 화면을 보면 지갑을 다시 열고 또 돈을 넣을 수밖에 없다.
게임장 직원은 “곧 대박이 터질 것 같은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리를 일어날 자제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기능은 게임기 유통업체가 게임기를 설치해 줄 때 불법적으로 곧바로 추가된다.
또 이 게임은 승률이 92∼104%로 맞춰져 있지만 이 또한 게임업장에서 임의로 조정된다. 승률이 92∼104%란 얘기는 1만 원을 투입하면 최대 800원을 잃거나 400원을 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게임장 주인들이 고객들 모르게 게임기를 수시로 껐다 켜는 등의 수법으로 승률을 떨어뜨려 검찰과 경찰의 단속에 적발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이 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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