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완(사진) 대통령비서실장이 사행성 성인게임 확산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잘못 됐다는 비판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24일 ‘4륜 공동 책임론’을 제기했다. 26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이날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연 자리에서였다.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도 이날 오전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정책 관리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도 크지만 국회와 야당의 책임도 크며, 사전에 경고음을 울리지 못한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비슷한 말을 했다.
여권 지도부가 공동책임론을 핑계로 현 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국회와 언론에 떠넘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검경은 대통령 소관 아니다?=이 실장은 “정책이 미칠 영향, 초래될 결과 등을 예측해 챙기지 못한 것은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정부의 1차적 책임”이라면서도 “국회는 제대로 감시하고 챙기지 못했고, 검찰과 경찰은 광의의 사법부로서 단속하는 기능이라면 챙겼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조직법상 검찰과 경찰은 엄연히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 조직의 일원으로, 대통령의 통제를 받는다. 검찰과 경찰이 제대로 단속을 하지 않아 사태가 확산됐다면 그 정치적 책임은 당연히 대통령에게 있는 셈이다. 검찰과 경찰이 대통령과 별개의 조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리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실장은 국회의 책임도 거론했지만, 국회 관계자들은 “국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행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비판은 행정부가 받아들여야 실효성이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정부와 여당은 동일체로 움직이기 때문에 정부는 국회를 움직일 힘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정부가 국회 탓을 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언론이 국정 파트너?=이 실장은 “최근 1주일 새 이 문제가 불거져 터졌는데 갑자기 돌출한 사안이 아니지 않느냐”며 “언론이 ‘국정 4륜’의 한 축으로서 사회 환경 감시 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례로 볼 수 있으며 언론학 교과서에 기록될 일”이라고 말했다.
언론을 ‘국정 파트너’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동안 노무현 정부가 언론에 대해 취했던 태도와는 거리가 먼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론 권력이 최대의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21일 국무회의에서는 ‘바다이야기’ 의혹과 관련한 언론의 문제제기를 비판하며 “언론은 이제 정치의 영역으로부터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소한 언론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는 발언은 아니었다. 줄곧 언론에 대해 정부 비판을 자제하라는 식으로 말하던 정부가 왜 좀 더 일찍 문제제기를 해 주지 않았느냐며 언론을 탓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상당수 언론은 이미 지난해부터 간헐적으로 사행성 오락실의 폐해를 지적해 왔지만 정부가 이를 경종으로 받아들이지 않은게 문제”라고 말했다.
윤영철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언론이 과거에 바다이야기의 문제점을 보도해 왔는데도 언론의 책임을 묻는다면 사실관계를 잘못 알고 말하는 것”이라면서 “정책이 미칠 영향, 초래될 결과 등을 예측해 챙기지 못한 것은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정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진상이 규명돼야 사과도 가능?=이 실장은 야당이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를 통해 진상과 사실 등 전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나면 그것을 평가한 뒤 사과의 수준과 방법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장 대국민 사과를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모순이 있다. 노 대통령은 20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에서 바다이야기 파문에 대해 “게이트는 없다. 정책 실패가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야당들은 이에 대해 대통령이 진상 규명 의지 표명에 앞서 사건의 성격을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비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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