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학의’는 박제가가 1778년에 청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와 지은 책입니다. ‘북학(北學)’이란 말은 ‘북쪽에서 배우자’는 뜻이지요. 물론 북쪽은 ‘청나라’를 말합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선비들은 청나라를 오랑캐 나라라고 멸시하면서, 청나라의 여러 가지 제도 및 학문 등도 ‘하찮고 볼품없는 것’이라고 얕잡아 봤어요. 오랑캐의 학문과 제도를 받아들이고 배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지요.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청나라에 의해 멸망한 ‘명나라’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조선의 선비들은 왜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불렀을까요?
혹시 ‘중화(中華)’라는 말을 알고 있나요? 예전의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자 세계의 빛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생각을 잘 나타내는 말이 바로 중화입니다. 하지만 중국 대륙에 산다고 해서 아무 민족이나 다 ‘중화’가 될 수는 없었지요. 중국 대륙의 북쪽에 있었던 거란족, 만주족, 여진족 등은 중화가 아니라는 거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한족(漢族)’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족이 아닌 다른 민족은 한낱 오랑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지요.
박제가가 살던 때, 중국 대륙은 청나라가 지배했습니다. 청나라는 ‘한족이 세운 나라인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만주족이 세운 나라’이지요. 조선 선비들에게는 청나라가 오랑캐의 나라로 보인 거지요. 한족의 문화에 푹 빠진 나머지, 다른 문화를 멸시했던 조선의 선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여러분의 생각을 들어보기 전에, 박제가가 한 말을 들려줄게요.
“오늘날 우리나라(조선)의 선비들은 ‘오랑캐’라는 글자 하나로 천하의 모든 것을 없애고 있다.”
박제가는 그러한 선비들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교로 붙이고 옻칠을 한 속된 각막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떼어낼 수가 없다.”
만약 여러분이 그 당시에 살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이고, 요놈의 선비들. 도저히 안 되겠구나’ 하고 포기했을까요, 아니면 “어허, 이 양반들아! 나라 발전을 위해서 정신 좀 차리는 게 어때?” 하고 그들을 설득했을까요?
백성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박제가는 뭇 선비들의 눈에 붙어 있는 편견이라는 각막을 떼어내기 위해 낮밤을 가리지 않고 글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오랑캐가 타고 다니는 물건을 조선에서도 사용하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훌륭하신 조선의 선비 여러분, 우리도 오랑캐가 타고 다니는 수레 한번 타봅시다, 어험!”
박제가는 조선이 발전하려면 반드시 수레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수레는 물건을 싣거나 사람을 태우는 도구입니다. 그런 수레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요? 박제가가 살았던 18세기에는 수레가 현재의 자동차와 같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었겠지요. 혹시 여러분은 교통수단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자, 그럼 여기서 박제가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어보지요.
“만물을 수레를 이용하여 실으니 그 이로움이 이보다 큰 것이 없다.”
“자기 땅에서 많이 나는 물건을 다른 곳에서 나는 물건과 교환하여 풍족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백성들은 없다. 그런데 정작 물건을 나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수레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자, 이제는 수레가 지닌 가치에 대해 잘 알 수 있겠지요? 그런데 놀랍지 않나요? 박제가가 살던 때 조선에는 수레가 없었다는 사실 말이에요. 왜 조선의 선비들은 그렇게 간단한 이치를 깨닫지 못했을까요?
아 참, ‘북학의’에는 이런 말도 있어요. “우리나라는 검소함으로 인해서 쇠퇴할 것이다.” “재물은 우물과 같다. 퍼내면 물이 가득하지만, 길어내기를 그만두면 물이 말라버림과 같다.” 박제가는 돈을 저축하는 것보다, 소비하는 것이 경제 발전에 더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여러분은 박제가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나요?
조선의 진정한 선비 박제가가 쓴 ‘북학의’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지혜가 담겨 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던진 질문에 대한 해답도 모두 ‘북학의’에 있어요. 이제 남은 일은 여러분이 ‘북학의’를 직접 읽어보는 겁니다. 모두 잘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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