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경숙]비전 없는 대학, 미래도 없다

  • 입력 2006년 8월 30일 03시 04분


최근 뉴스위크의 세계 대학평가에서 한국의 대학들은 하나도 글로벌 100대 대학 순위에 들지 못했다.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은 우리로선 적지 않은 충격이다. 한국 대학의 글로벌 경쟁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질 만하다.

21세기 지식산업의 원동력이 될 고급인력을 배출하는 대학의 역할은 날로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의 대학들은 광복 이후 60여 년 동안 이룬 양적 성장의 단계를 넘어서서 시대적 요청과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질적 혁신을 이뤄야 할 도전에 직면해 있다. 어떻게 해야 질적인 도약을 통해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첫째, 대학은 비전과 교육 목표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헬렌 켈러는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보다 더 불행한 것은 시력은 있되 비전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비전이 없는 대학은 미래 인재 양성의 장(場)으로서 사명감을 포기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대학은 명확한 비전과 목표로 구성원의 역량을 집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이끌어내는 것이 총장의 리더십이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대학 총장은 재임 기간이 짧아 비전과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미국 대학의 경우 대부분 총장 재임 기간이 10년이 넘는다. 하버드대 총장은 평균 재임 기간이 13년이라고 한다. 세계 유명 대학의 전현직 총장급으로 구성된 자문단 ‘블루리본 패널’도 2001년 서울대에 ‘총장과 학장의 임기를 연장해야 책임 운영이 가능하다’고 권고했다.

둘째, 비전과 목표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그동안 대학 구성원들은 각자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챙기느라 대학이 나아갈 방향과 미래에 대해 거의 무관심했다. 총장을 비롯한 대학 책임자들부터 노조 파업, 등록금 투쟁, 교수들의 다양한 요구에 대처하기에 바빠 학교 발전전략을 논의할 여력조차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우리나라도 대학교육의 수요자보다 공급자가 많아졌고, 대학 취학률이 82.1%(한국교육개발원, 2005년)에 달하는 등 고등교육 보편화 시대로 접어들었다. 따라서 기존의 획일적인 발전 모형으로는 대학의 존립 여부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대학 구성원이라면 이 같은 냉엄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셋째, 재원 확보를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대학의 재정 문제는 비단 대학뿐 아니라 국가 및 사회 각계의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해결이 가능하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학교 교육비 구성을 보면 고등교육 단계의 정부 부담 비율이 0.3%로 OECD 국가 평균 1.1%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학 예산에 대한 국고 지원도 사립대의 경우 일본은 12%, 미국은 15%인 데 비해 우리는 4.5%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기부 문화도 정착되지 않아 예산의 대부분을 등록금과 학교법인의 전입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앞으로 대학은 대학뿐 아니라 정부, 기업 및 사회 각계가 땀과 정성으로 살려내야 한다.

미국의 대학 재정 상태는 우리와 아주 다르다. 기업과 사회가 대학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는 대학들이 인재 양성과 연구 성과 등으로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힘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학과 투자자 사이에 윈윈 관계가 이뤄지고 있는 경우를 눈여겨봐야 한다. 스탠퍼드대의 경우 기부자가 원하는 데 따른 다양한 기부 상품을 개발해 왔다. 연구 프로젝트뿐 아니라 특정 교수, 특정 학과에 대해서도 기부금을 나눠 주는 등 선택의 폭을 넓혔다. 기부금을 투자사에 맡겨 관리토록 함으로써 지난해에는 투자 수익률을 19.5%까지 올리기도 했다. 우리 대학들도 이처럼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정부 또한 고등교육 예산의 증대와 기부 활성화를 위한 각종 세제 혜택 등 다양한 보상 제도를 운용하고, 대학 수익사업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로 이를 뒷받침해 줘야 한다.

교육은 즉흥적이고 편의적인 계획인 ‘권의지계(權宜之計)’가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백년대계(百年大計)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경숙 객원논설위원·숙명여대 총장 kslee@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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