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동서남북/오류지적에 실수인정… 두 학자의 용기

  • 입력 2006년 9월 6일 06시 33분


지난달 31일 오후 1시 울산 달천철장(울산시 기념물 제40호) 유적지에서 (재)울산문화재연구원이 두 달간 벌여 온 유적 발굴조사 현장 발표회가 열렸다.

달천철장은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기원전 2, 3세기경부터 한반도에서 채취한 철을 중국으로 수출했다’는 기록을 뒷받침하는 채광지(採鑛地)로 추정되는 곳. 울산문화재연구원은 “수혈유구에서 기원전 2세기의 삼각형점토대토기편 등이 발견된 점에 미뤄 이때부터 철을 캐냈다고 볼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물증’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태워왔던 사학계는 환호했다. 일부에서는 “한반도 철 생산시기를 1세기가량 앞당길 획기적인 발굴”이라며 “국사 교과서도 바뀌어야 한다”고 흥분했다.

그러나 고대 제철유적 권위자인 국립중앙박물관 손명조 선임연구관은 현장을 살펴본 뒤 정반대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타원형인 수혈유구의 깊이가 1m, 넓이도 가장 긴 곳이 3m 미만인 데다 슬래그가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뤄 철을 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울산문화재연구원 안재호(동국대 교수·발굴팀 조사위원) 부원장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고 그동안 힘들게 발굴작업을 해 왔던 발굴팀도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뒤 안 부원장이 “채광 흔적이 없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채광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결과를 발표했다”고 시인했을 때 현장 설명회에 참석했던 문화계 인사와 취재진 등 100여 명도 허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존심 하나로 먹고 산다’는 말이 나도는 학계에서 한 학자의 과오 지적에 다른 학자가 깨끗이 수긍하는 모습은 한마디로 신선했다. 학자적 양심에 따라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이 있는 한 우리 사학계의 앞날도 밝을 것이라는 생각에 현장을 떠나는 기자의 발걸음은 결코 무겁지 않았다.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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