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는 1997년 노사정 합의사항이다. 중소기업 노조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노총의 경우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불허가 현실화되면 세력이 크게 위축될 것을 우려하며 단결권 훼손이라는 원칙을 포기하고 복수노조 허용을 한 번 더 유예하기로 합의한 듯하다.
한국경총 등 사용자단체는 노조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 금지를 지속적으로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유예하는 데 합의했다. 사업장에서의 혼란을 염려해 복수노조 허용을 유예하는 내용을 얻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단위사업장의 복수노조 허용은 예정대로 이행돼야 한다. 국제노동 분야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는 말이 있는데,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기본권으로 인식되는 복수노조를 불허함으로써 받는 불이익을 의미한다.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노사관계의 혼란에 대한 사용자 우려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 사업장에서의 혼란은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의 부칙조항에 규정된 대로 정부가 교섭창구 단일화방안을 강구하고 시행하면 최소화될 수 있다. 노사 간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없다면 정부 단독으로 교섭창구 단일화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 지급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노조를 어용화하기 위해 만든 잘못된 관행이다. 노사관계를 올바른 길로 유도하기 위해서 반드시 시정돼야 하는 조항이다.
일부 대기업 노조의 경우 노조원으로부터 매년 몇 십억 원의 노조비를 거두면서 한편으로는 사용자로부터 조합비보다 많은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지원받는가 하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또 노동운동과는 무관한, 예를 들어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반대시위에 참여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 정부가 일부 노동계와 사용자단체의 합의를 이유로 법의 시행을 다시 유예한다면 법과 원칙의 준수를 통한 노사관계 질서 정립이라는 정부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사용자의 우려를 빌미로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따른 당장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떳떳한 길로 나아가야 한다.
사용자도 복수노조 허용은 언젠가는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므로 합리적 대처방안을 강구하고 대응 역량을 구축해야 한다. 복수노조 허용을 설립 시부터 주장한 민주노총이 주요 대기업 사업장에서 현재의 독점적 지위가 위협받는 것을 우려해 복수노조 허용의 유예를 묵인한다면 자주적 노동운동의 메카라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부인하는 모순에 빠질 것이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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